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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폐위된 왕 연산군의 묘

연합뉴스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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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폐위된 왕 연산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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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조선 역대 국왕 중 폭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은 누구일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1476∼1506)일 것이다.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인 그의 삶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쓰인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사치와 향락의 행태 등이 그려진다. 아버지 성종에 이어 1494년 왕위에 오른 그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됐다. 중종은 이복형 연산군이 쫓겨난 뒤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은 강화 교동으로 유배됐고 두 달 뒤 세상을 떠났다.

맨 위 왼쪽이 연산군의 묘 [촬영 김정선] 2026.1

맨 위 왼쪽이 연산군의 묘 [촬영 김정선] 2026.1


연산군의 무덤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불리는 능(陵)이 아니라 묘(墓)로 일컬어진다. 조선왕릉은 길지를 신중하게 골라 위엄을 갖춰 조성됐다. 난간석 또는 병풍석을 함께 두르고 무석인(무인 모습의 석물)과 문석인, 석마(말 모양의 석물)와 석양, 석호 등을 배치했다. 정자각도 설치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 중종의 능인 정릉도 이러한 구조였다. 하지만, 연산군묘는 다른 모습이다.

연산군(왼쪽)과 거창군부인의 묘 [촬영 김정선] 2026.1

연산군(왼쪽)과 거창군부인의 묘 [촬영 김정선] 2026.1


연산군묘는 서울 도봉구에 있다.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인데, 우이신설선으로 전철을 갈아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북한산우이역에 내리면 등산복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몇 분만 가면 연산군묘 인근 정류장에 도착한다. 주택가 사이 안내판을 보고 걸어가면 보호수인 방학동 은행나무와 맞닥뜨린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인근에 계단이 보이고 그 위에 묘역이 있다.

문석인 [촬영 김정선] 2026.1

문석인 [촬영 김정선] 2026.1


경사진 묘역에는 다섯 개의 무덤이 있다. 규모가 더 큰 조선왕릉과는 달리 이곳 묘역은 한눈에 들어온다. 맨 위 왼쪽이 연산군, 오른쪽이 거창군부인 신씨의 무덤이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 폐위로 왕비에서 물러나게 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에 따르면 거창군부인 신씨는 1512년 중종에게 연산군의 묘를 강화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곳은 원래 거창군부인 신씨의 외할아버지인 임영대군의 땅이었고, 임영대군은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묘를 조성했다. 요청을 받은 중종은 왕자의 예에 따라 묘를 옮기도록 했다고 한다. 연산군의 무덤은 본래 있던 의정궁주묘 위쪽에 자리하게 됐다. 맨 아래 2개의 무덤은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나중에 연산군의 옆자리에 묻혔다.

재실 [촬영 김정선] 2026.1

재실 [촬영 김정선] 2026.1



연산군묘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왕자의 묘제에 따라 곡장(담장), 장명등, 문석인, 재실 등이 갖춰져 있다"고 적혔다. 실제 모습도 그대로다. 조선왕릉에서 봤던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는 없고 정자각도 없다. 나란히 있는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무덤에는 난간석도, 병풍석도 없다. 연산군 무덤 앞 표석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쓰였다.

묘역 근처에 재실(齋室·묘 관리자가 지내는 업무공간이자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 있다. 재실 벽에는 영조의 전교가 적혔다는 '치제(致祭) 현판'이 있다.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재실에는 이에 대한 한글 안내판이 있다. 현판은 연산군 제사를 외손이 지내게 하고 군사 10명을 배치해 묘역을 살핌에 있어서도 소홀함이 없게 하라는 내용이다.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 따르면 현판에는 연산군과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광해군과 광해군 생모인 공빈 김씨 묘소의 제사와 석물 보수 등에 대한 명이 함께 적혔다. 연산군 사후로 따지면 270여년이 지난 뒤였다.


연산군묘 입구 안내소를 지나 묘역을 둘러보고 재실까지 살피고 나면 방문객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묘역이 조성된 이력을 알게 되고, 현시대에 관리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하면서는 폐위된 왕과 역사 속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당대 상황과 백성들의 삶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연산군묘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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