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앙드레를 그린 드가의 <압생트>와 마네의 <술꾼>
에드가 드가, 압생트(L’Absinthe), 1875~6, 캔버스에 유채, 92x 68.5cm, 오르세 미술관 |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태생적으로 파리라는 대도시에서 부르주아로 살아온 화가였다. 그래서 연습실이나 무대 이외의 공간에서 바라본 발레리나, 카페 콩세르(Café-concert)의 가수, 경마 등 상류층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 또는 폐쇄된 공간인 실내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즐겨 그렸다. 드가는 또한 다른 화가들이 싫어하던 카메라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애용했다.
카페 드 라 누벨 아텐(Café de la Nouvelle-Athenes)에서, 한 여성과 한 남성이 나란히 앉아 있지만 각자 침묵 속에 고립되어 있다. 그들의 시선은 텅 비어 우울하며 수척한 얼굴에 말을 걸기조차 어렵다. 테이블에는 독주이고 환각 효과가 있어 이후 금지된 초록색 압생트가 놓여 있다.
목로주점과 드가의 압생트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 노동자 계층과 도시 빈민들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졸라의 '목로주점'과 드가의 <압생트>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들이다.
'목로주점'은 노동자들이 싸구려 독주를 마시며 현실을 잊고자 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로, 압생트는 그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술이었다.
졸라는 이 작품을 통해 알코올 중독과 빈곤이 노동자 계층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드가의 그림 <압생트>에서도 강렬하게 드러난다.
드가의 <압생트>는 카페에 앉아 무기력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여성을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압생트가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공개 당시 "추악하고 역겹다"는 혹평을 받았다.
두 작품은 문학과 회화를 넘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예술적으로 기록한 중요한 사례이다. 졸라와 드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조명하며, 예술이 미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라 누벨 아텐과 플라스 피갈은 현대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과 사색을 나누는 지적인 장소이다. 이곳은 사상과 미학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마치 1686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문을 연 ‘르 프로코프(Le Procope)’ 카페가 지식인들의 토론장으로 자리했던 것처럼, 이 두 곳 역시 보헤미안 정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압생트>의 구도는 즉흥적인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고뇌와 세밀한 구성이 숨어 있다. 이는 공간과 인물의 긴장감, 그리고 그 안에서 흐르는 공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걸작이다.
<압생트>의 엘렌 앙드레 |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만나는 누벨 아텐 카페에서 배우 엘렌 앙드레(Ellen Andree)와 조각가 마르슬랭 데부스탱(Marcellin Desboutin)이 서로 외면하고 앉아 있다. 젊은 여자는 술에 취해 주변 환경에는 무심하다. 여인의 절망적이고 고립된 모습, 카페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드가는 연출했고 섬세하고 정교한 선으로 현대 카페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드가의 <압생트>는 19세기 도시 생활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강렬한 명암 대비와 인물의 공허한 시선이 특징이다.
<압생트>의 마르슬랭 데부스탱 |
특히 드가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구도를 잡으며, 거울 속 실루엣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정서적 상태와 사회적 상황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무심하거나 단절된 모습으로 도시의 고독과 소외를 상징한다.
19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의 삶은 변화했고, 예술가들은 이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퇴폐적인 카페 문화는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드가와 마네는 이를 통해 현대의 양면성을 표현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단순히 빛과 색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변화를 작품 속에서 탐구하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려 했다.
드가의 작품을 둘러싼 오해 역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대중은 흔히 그림 속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려 하지만, 예술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 술꾼, 1877년경, 캔버스에 유채, 76.3x50.2cm, 오르세 미술관 |
마네는 같은 모델인 알렌 앙드레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아한 여성으로 묘사하며, 작은 디테일로 그녀의 신분과 당대 관습을 암시한다.
특히 자두 브랜디와 피우지 않은 담배는 카페에서 홀로 앉아 있던 여성들은 성매매 여성이라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마네의 인물들은 때론 눈길을 피하며, 때론 침묵 속에서 관찰자를 응시하며 서사를 형성하는데, 이 점에서 드가의 작품과 다른 깊이를 형성한다.
마네는 초상화 속에서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적 의미를 교묘하게 담아내는 데 매우 뛰어났다. 그의 세련된 표현 방식과 상징적 요소들은 현대의 관람자들을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에두아르 마네, 질베르 마르슬랭 데부스탱의 초상, 화가, 1875, 130×193cm, 상파울루 미술관 |
마르슬랭 데부스탱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었다. 이탈리아 귀족 출신으로 마네와 함께 토마 쿠튀르에게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지만, 그는 보헤미아적 삶을 선택했다. 바티뇰레 지역에서 ‘보헤미아의 왕자’라 불리며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화가 뒤에 있는 그레이하운드는 그림을 뜯어먹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인 미술 양식은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1863년 이후,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의 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술적 탐구를 지속했으며,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의 <파블로 데 바야돌리도의 초상>과 <후안 데 파레야의 초상> 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인 접근을 발전시켰다. 마네는 배경을 최소화하고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후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졌으며, 이는 당시의 초상화 개념을 뛰어넘어 현대성을 담아내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마네가 중산층의 일상을 화폭에 담은 것은 사회적 계층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되는데, 이는 자연주의 문학과도 맞물린다. 공쿠르 형제와 에밀 졸라가 현실적인 삶을 문학적으로 기록했다면, 마네와 드가는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도시 여성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두 화가는 당시의 현대성, 특히 파리라는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을 주목했고,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당대의 예술 개념을 확장했으며, 마네와 드가의 작품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에드가 드가, 카페 콩세르의 여가수, 1885, 에칭에 사용된 파스텔화, 오르세 미술관 |
아이작 드 카몽도(Isaac de Camondo) 백작은 예술 애호가이자 수집가로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품을 후원하며 미술사에 큰 영향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911년, 드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압생트>와 <카페 콩세르의 여가수>를 포함한 많은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카페 콩세르의 여가수>는 야외 공연장의 밤의 활기찬 순간을 포착하면서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드가 특유의 역동적인 구도와 조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이작 드 카몽(Isaac de Camondo)백작, 위키피디아 |
드 카몽도 백작의 이러한 기증은 인상주의와 드가의 예술을 후대에 남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수집 활동은 오늘날까지도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후원 덕분에 드가의 작품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었고, 인상주의가 예술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는 데 기여했다. <끝>
최금희 작가 |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