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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못 뛰어 450경기 롱런" 현영민 깜짝 고백…4강 신화 엑스트라가 K리그 역대 출장 5위 레전드로→"악재가 악재가 아니더라"

스포티비뉴스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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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못 뛰어 450경기 롱런" 현영민 깜짝 고백…4강 신화 엑스트라가 K리그 역대 출장 5위 레전드로→"악재가 악재가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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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전 국가대표 수비수 현영민(46)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결장'이 자신의 프로 커리어 롱런에 공헌했다고 털어놨다.

현영민은 최근 유튜브 채널 '나 김영광이오'에 출연해 "월드컵에서 1경기도 뛰지 못한 건 선수로서 분명 한(恨)이었다. 다만 돌이켜보면 김영광도 프로에서 600경기, 김병지 선배도 700경기, 나 역시 거의 450경기가량을 뛰며 롱런했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간절함으로 작동해 오랫동안 현역 생활을 이어 가는 동력으로 기능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광희초 5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은 현영민은 2002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 꿈을 이뤘다. 구름 위를 걸었다. 강철 체력과 강력한 스로인 능력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 눈을 사로잡아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조연이 됐다. 본선 7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하면서 심장은 출전 동료들과 똑같이 뛰고 있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후 2005년 울산을 K리그에서 우승시킨 현영민은 이듬해 1월 해외무대도 밟았다.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개월간 뛰다 그 해 여름 다시 울산으로 복귀했다. 2010년 FC서울로 새 둥지를 틀자마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현영민은 2013년 성남을 거쳐 2014년부터 전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 갔다. 2017년 약 27년간 신어온 축구화 끈을 풀고 해설위원과 지도자(현대고 감독), 행정가(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국가대표로선 A매치 1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프로 전장에서 존재감은 남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레전드다. 통산 437경기를 소화하며 9골 55도움을 쌓았다. 왼쪽 풀백 최다 공격포인트는 신홍기 전 전북 현대 코치(336경기·77개)에게 밀리지만 출전 수는 당당히 1위다.

K리그1에서만 379경기 55도움을 적립했다.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역대 최다 출장 5위, 최다 도움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2 한일 월드컵 멤버 가운데 가장 늦게 은퇴한 선수로 30대 후반 나이에도 체력 소모가 심한 풀백 포지션에서 매 시즌 30경기 안팎을 뛰는 '괴력'을 뽐내 여러 선후배로부터 찬사를 얻었다.



현영민은 "나를 비롯해 김영광, 김병지 선배, 이동국 등 월드컵 본선에서 출장과 관련해 미진했던 선수들이 프로에선 500경기 이상 소화하며 롱런했다. 한이 있고 (그 한이) 간절함으로 바뀌어 오랫동안 현역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는 에너지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본선에서 못 뛴 게 당시엔 참 아쉬웠지만 (길게 보면) 그렇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다. 그래도 뛰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웃음)"이라며 20여 년 전 기억을 벙글거리며 회고했다.



"개인적으로 서른 살이 넘으면 베테랑이라 판단한다. 2002년 처음 프로에 입단할 땐 사실 이렇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할진 몰랐다. 그냥 대학(건국대) 졸업하고 3~4년 뛰다 군대 다녀오고 30대 되면 5년 정도만 더, 서른 다섯 살까진 잘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2002 월드컵 멤버에 뽑혀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덕분에 해외(러시아)에도 갈 수 있었다"며 큰 욕심을 부리기보단 간략한 '얼개'를 세우고 하루하루 신경을 쏟아 축구에 매진한 것이 프로 16시즌 장기 생존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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