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민은 최근 유튜브 채널 '나 김영광이오'에 출연해 "월드컵에서 1경기도 뛰지 못한 건 선수로서 분명 한(恨)이었다. 다만 돌이켜보면 김영광도 프로에서 600경기, 김병지 선배도 700경기, 나 역시 거의 450경기가량을 뛰며 롱런했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간절함으로 작동해 오랫동안 현역 생활을 이어 가는 동력으로 기능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광희초 5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은 현영민은 2002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 꿈을 이뤘다. 구름 위를 걸었다. 강철 체력과 강력한 스로인 능력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 눈을 사로잡아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조연이 됐다. 본선 7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하면서 심장은 출전 동료들과 똑같이 뛰고 있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후 2005년 울산을 K리그에서 우승시킨 현영민은 이듬해 1월 해외무대도 밟았다. 러시아 명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개월간 뛰다 그 해 여름 다시 울산으로 복귀했다. 2010년 FC서울로 새 둥지를 틀자마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현영민은 2013년 성남을 거쳐 2014년부터 전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 갔다. 2017년 약 27년간 신어온 축구화 끈을 풀고 해설위원과 지도자(현대고 감독), 행정가(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K리그1에서만 379경기 55도움을 적립했다.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역대 최다 출장 5위, 최다 도움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2 한일 월드컵 멤버 가운데 가장 늦게 은퇴한 선수로 30대 후반 나이에도 체력 소모가 심한 풀백 포지션에서 매 시즌 30경기 안팎을 뛰는 '괴력'을 뽐내 여러 선후배로부터 찬사를 얻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