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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 밀라노] 10년간 썰매 밀다가 조종사로… “재능보다 노력 믿는다”

조선일보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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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 밀라노] 10년간 썰매 밀다가 조종사로… “재능보다 노력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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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늦깎이 파일럿’ 김진수
작년 가을 강원도 평창에서 스타트 훈련 중인 김진수. /장련성 기자

작년 가을 강원도 평창에서 스타트 훈련 중인 김진수. /장련성 기자


얼음 위 F1(포뮬러 원)이라 불리는 봅슬레이에서 썰매를 운전하는 ‘파일럿’은 다방면의 재능을 필요로 한다. 예민한 손끝 감각으로 최고 시속 150㎞를 넘나드는 썰매의 방향을 잡고, 엄청난 중력 가속도를 견디면서 눈에 안 보이는 코너를 예측하는 공간 지각 능력도 필요하다. 대회 장소마다 달라지는 코너의 휘는 정도, 구역별 얼음 상태 등을 머릿속에 암기해야 하고, 브레이크맨 등을 이끄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수준의 봅슬레이 파일럿이 나오려면 10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다.

다음 달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파일럿을 맡는 김진수(31)는 ‘돌연변이’ 같은 선수다. 파일럿이 된 지 3년여밖에 안 됐지만,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월드컵에서 연일 선전하며 올림픽 메달까지 노리는 기대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김진수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끝난 월드컵 6차 대회 2인승에서 1·2차 합계 2분13초48로 4위에 올랐다. 3위에 오른 영국 팀에 불과 0.05초 뒤졌다. 김진수는 11일 “4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이라며 “남은 기간 컨디션을 끌어올려 올림픽에서 100%를 쏟아내겠다”고 했다.

김진수는 2013년 봅슬레이에 입문한 이후 10년 가까이 브레이크맨으로 뛰었다. 브레이크맨은 스타트 시 폭발적인 힘을 내 썰매를 밀고, 주행을 마칠 때 썰매를 멈추는 게 주 임무다. 예비 파일럿이 경험 삼아 브레이크맨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장기간 브레이크맨 역할을 맡다가 파일럿으로 전향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진수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18위(4인승)·19위(2인승)를 기록한 뒤 변화를 선택했다. 그는 “(파일럿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원한다고 시켜주는 자리도 아니다”라며 “과거의 경력, 봅슬레이에 대한 애정, 장기적 계획 등을 평가한 뒤 나에게 파일럿 기회를 준 것 같다”고 했다.

늦깎이 파일럿이 3년여 만에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데엔 브레이크맨으로 ‘10년’을 보낸 경험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파일럿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브레이크맨은 온몸의 신경으로 썰매의 움직임을 암기해야 한다”며 “트랙을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어느 지점에서 썰매가 어떻게 미끄러져야 기록을 줄일 수 있는지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시작한 파일럿 역할에 한시라도 빨리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봅슬레이 대표팀 선배인 원윤종 현 IBSF 선수위원을 ‘스승’으로 모셨다. 원 위원은 2018 평창 올림픽 때 한국 봅슬레이 사상 첫 메달(4인승 은메달)을 땄고, 베이징 올림픽에선 파일럿으로 김진수를 이끌었다. 김진수는 “코너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중력 데미지를 어떻게 활용해 기록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원 위원에게) 수시로 물어본다”며 “전복 위험이 적은 트랙에서 이론을 실전에 적용해 가며 부족한 경험을 메우고 있다”고 했다.

그만의 독특한 훈련법도 개발했다. 그는 “파일럿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다가오는 트랙의 변화를 눈으로 보면서 썰매를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동체시력이 뛰어나야 한다”며 “그런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무작정 정보를 찾아본 뒤 복싱 선수들이 하는 ‘탭볼’을 사서 효과를 많이 봤다”고 했다. 헤어밴드에 달린 공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손으로 치는 도구다.


김진수는 스스로 “난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 숙성에 시간이 걸리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육상 선수이던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잘하지 않았고, 봅슬레이 선수가 돼서도 늘 ‘턱걸이’로 다음 단계로 성장했다”며 “하지만 노력의 결실을 믿은 덕분에 한 계단, 한 계단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파일럿이 돼 올림픽 메달이란 계단을 오르려고 합니다. 한국 봅슬레이에서 후회 없는 경험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올림픽 정조준하는 김진수

31세·강원도청, 179㎝·78㎏

2014년 소치 올림픽 후보 선수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브레이크맨)4인승 18위, 2인승 19위

2022-2023 시즌 중 파일럿으로 전향

2024년 2월 IBSF 월드컵 데뷔전 2인승 동메달


2025년 11월 IBSF 월드컵 4인승 동메달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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