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청년’ 73만명
이 구조적 절망의 주범은
우리 86세대다
수구와 적폐 돌아보고
부모찬스 쓰려 하지 말고
자녀의 선택 믿고 응원을
이 구조적 절망의 주범은
우리 86세대다
수구와 적폐 돌아보고
부모찬스 쓰려 하지 말고
자녀의 선택 믿고 응원을
서울 한 대학교 앞이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시험을 마친 수험생들과 학부모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
연구실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평소 가까이 지내는 미디어 업계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친구의 자녀에 대한 관심 부탁이었다. “2x학번 ㅇㅇ입니다. 제 고교 절친의 아들인데, 혹 지나가다 좋은 격려 말씀이라도 해주신다면 저와 친구는 감지덕지입니다.” ‘뭐 이런 연락을...’ 싶다가 책을 놓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오죽하면 그 부모는 친구를 통해 이런 부탁을 했을까. 대학에 보내 놓고도 자식 일로 속 끓이는 부모 심정이 읽혔다.
최근 이런 일이 부쩍 늘었다. 면담 자리에 함께 온 부모, 애가 아프다며 대신 연락한 부모, 지각한 학생을 태우고 온 부모....
필자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얼마 전 치른 아들 혼사에서 겪은 에피소드다. 애가 원한 건 가까운 친구 중심의 작은 결혼식이었다. 필자도 소박한 식을 원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들은 주례를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 토를 달진 않았지만 걱정이 남았다. “아직 학생 신분인데... 지도교수가 서운해하진 않을까?” 아들은 아빠의 걱정스러운 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며칠 동안 옛날 앨범들을 뒤졌다. 결혼식 날, ‘신랑·신부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진 동영상이 답을 주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양가 부모였다. 앳된 청춘들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워온 과정이 펼쳐졌다. 옆에서 아내가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눈가를 훔쳤다.
그 장면들은 한동안 잊고 지낸 기억을 되살렸다. 86세대 부모 역할은 한순간도 녹록지 않았다. 차별·비하 시비 소지에도 불구, “자식을 낳아 키워보지 않은 것들이...”만 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이웃에 누가 살고 죽는지 모른 채 내 가족과 아이들을 챙겼다. 그 맹목적인 과정에 분명한 좌표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굳이 찾자면 민주화 이후 개인화·세계화 시대의 성공 모델? 그것이 옳고 그른지 돌아볼 여지도 없었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당면한 현실은 힘들다 못해 가혹하다. 필자의 마음속 ‘보수 정치 혁신의 원톱 아이콘’인 김세연 전 의원은 2024년을 맞이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역사의 큰 장(章)이 넘어가고 있다. 기술이 경제를, 경제가 사회를, 사회가 정치를 바꾸는 역사의 순환이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내연기관과 화석연료 시대의 막이 내리고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시대의 막이 올라간다.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가? 생산 현장에서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사람을 대신한다. 서비스업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가?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서비스 로봇이 접시를 나르고 챗봇이 고객 상담을 한다.”(김세연의 오버뷰, 2023.12.31)
지난 2년간 변화는 한층 가팔라졌다. 이제 혁신 없이는 어떤 개인, 조직, 기업, 국가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엔 여전히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즐비하다. 그 최대 피해자는 ‘쉬는 청년’ 73만명, 연간 해외로 떠나는 청년 2만2000명이라는 데이터가 말해주듯 우리 자녀 세대다. “수십 년째 업그레이드 안 된 한국이란 운영체제(OS)에서 한쪽은 시스템 접속 자체를 포기하고, 또 다른 쪽은 새로운 운영체제에 접속하러 떠나고 있다.” (이인열, 경제포커스, 2025.11.27)
이 ‘구조적 절망’의 주범으로 낡은 제도, 그것을 방치하는 정치권, 그 위에 편승하는 기득권층이 지목된다. 하지만 이제 솔직해지자, 이러한 장애물들의 집합적 실체는 다름 아닌 우리 86세대다. 자녀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폐의 뿌리에는 이전의 가치관과 성공 모델로 자녀의 삶을 재단하고 이끌려는 부모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에게 물려줄 만큼 당신의 삶이 좋았습니까.”
결혼식 동영상은 세대교체의 본질이 ‘증여’가 아닌 ‘교대’임을 일깨워 주었다. 조만간 후배에게 그것이 전해준 감동을 전하려 한다. 고교 친구의 아들은 나이 든 교수의 조언과 격려 없이도 잘해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급속한 기술·사회 변화가 중첩된 삶의 출발선에서 좌표를 정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시절 우리가 그러했다.
우리가 자녀 세대를 위해 해줄 것은 없다. 좌우를 불문하고 우리 안의 수구와 적폐를 돌아보는 것 말고는. 정치에 과몰입하지 말고, 아스팔트에 나서지 말고, 유튜브에 빠지지 말고, 자식 걱정에 부모찬스 쓰려 하지 말고, 그들의 선택과 판단을 믿고 응원하자. 우리가 그러했듯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헤쳐 갈 것이다. 그것이 부모 세대에게 남은 숙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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