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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주방 ‘남극’…남극의 셰프 안치영 [미담:味談]

헤럴드경제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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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주방 ‘남극’…남극의 셰프 안치영 [미담:味談]

서울맑음 / -3.9 °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조리대원 안치영 세프 인터뷰
“남극 생활 ‘식재료’부터 새로운 음식까지 모든게 도전”
“유튜브 보고 빵·초밥 처음 만들어…中 기지와 대결할뻔”
“대원들과 화합 덕분에 어려운 상황도 즐겁게 이겨내”
마포에 ‘남극반점’ 오픈…주문 즉시 조리 원칙으로 인기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조리대원 안치영 세프. 본인 제공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조리대원 안치영 세프.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연평균 기온 영하 50도. 극한(極寒)의 하얀 대륙, 남극.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공허의 땅에서도 미식은 꽃을 피운다. 얼음을 깨고 틔우는 설야(雪野)의 동백꽃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식탁의 온기를 지켜내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남극의 셰프’라 부른다.

남극반점의 안치영 셰프는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조리대원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남극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남극에서의 시간을 역경이 아닌 행복으로 회상하는 이유는, 도전을 사랑하는 그의 기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0.001%에 도전하라는 남극세종과학기지 채용 공고를 봤을 때 심장이 뛰었어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극행을 택했죠.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안치영 셰프가 가져온 식자재를 운반하는 대원들. 본인 제공

안치영 셰프가 가져온 식자재를 운반하는 대원들. 본인 제공



남극에서 그가 마주한 첫 번째 도전은 ‘식재료와의 전쟁’이었다. 조리대원은 남극 대륙에 입도할 때 1년 동안 사용할 모든 식재료를 함께 가져간다. 정확한 사용량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아, 어떤 재료는 턱없이 부족해지고 어떤 재료는 끝내 남는다. 모든 식재료는 냉동 보관을 해야 하기에 선택의 폭도 좁다. 한정된 재료로, 날마다 다른 식탁을 차려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요리사에게 남극은 혹독한 시험장이 된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식재료였어요. 예상보다 부족한 재료가 꼭 생기거든요. 적도를 넘어오면서 상하는 것들도 있었고요. 고기는 보통 보존을 위해 원육 상태로 가져가는데, 저는 손질을 해서 가져갔어요. 처음엔 편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고기에서 냄새가 나서 애를 먹었어요.”

님극 기지에서 요리 중인 안치영 셰프. 본인 제공

님극 기지에서 요리 중인 안치영 셰프. 본인 제공



황량한 남극에서 대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은 가장 확실한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안치영 셰프의 어깨는 늘 무거웠다. 조리대원으로서 그의 최우선 임무는 오직 하나, 대원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한 끼를 건네는 일이었다. 때로는 난감한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 역시 도전이었다. 어렵게 완성한 음식이 접시를 비워 돌아올 때, 그는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햄버거였어요. 제빵을 전혀 못했거든요. 처음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빵을 만들었어요. 대원들이 정말 좋아해 줬죠. 그 뒤로 맥모닝도 만들고, 생일이면 케이크도 직접 구웠어요. 제빵을 전혀 모르던 제가 남극에서 독학을 했네요. 결과물이 괜찮고, 대원들이 맛있게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남극세종과학기지 세종회관에서. 본인 제공

남극세종과학기지 세종회관에서. 본인 제공



조리대원의 하루는 녹록지 않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30분까지 아침을 차린다. 8시 30분 회의를 마치면 10시 30분부터 점심 준비가 시작된다. 12시부터 1시까지 배식, 오후 4시 30분엔 다시 저녁 준비에 들어가 6시 배식을 마친다. 주 6일이 이 일정으로 흘러간다. 평소에는 월동대원 18명의 식사를 책임지지만, 연구진이 합류하면 많게는 90명에 달하는 인원을 상대해야 했다. 보조 인원이 투입되긴 했지만, 대규모 식사를 책임지는 부담은 쉽게 줄지 않았다.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도대원들. 본인 제공

제37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도대원들. 본인 제공



안치영 셰프가 남극에서의 시간을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한 월동대원들 덕분이다. 그는 대원들과의 시간이 유독 평온했고, 따뜻했다고 회상한다. 그 기억이 얼마나 깊었는지, 귀국 후 다시 남극행에 도전했을 정도다.

“사람들은 남극 생활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체력적으로, 환경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었죠. 하지만 그보다 대원들과 함께 쌓은 추억이 훨씬 많았어요. 생일이면 함께 축하하고, 갈등 없이 서로 의지하며 웃던 시간들요. 지금도 대원들과 잘 지내요. 다시 그 행복을 느끼고 싶어 남극행에 재도전했는데, 떨어졌죠. 그래도 그만큼 남극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고단했던 한 주를 마무리하며 회식을 하는 남극 대원들. 본인 제공

고단했던 한 주를 마무리하며 회식을 하는 남극 대원들. 본인 제공



그의 남극 생활에서 가장 유쾌한 기억 중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 ‘남극의 셰프’ 촬영이었다. 2주간의 촬영 동안 출연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누군가가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활동 막바지라 식재료가 넉넉하지 않았어요. 백종원 대표랑 출연진들이 멸치국수를 해주신 적이 있는데, 멸치 똥을 하나하나 다 따서 기름을 내 만든 국수였어요. 정말 맛있었죠. 늘 요리만 하다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니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중국 기지와의 요리 대결이다.

“월동대장님과 중국 월동대장님이 사이가 아주 좋았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한·중 요리 대결 이야기가 나왔죠. 저도 중식을 했으니까, 정통 중식 셰프와의 대결이 정말 설렜어요. 세종기지에서 했다면, 한국 식재료로 한국식 중식을 선보여 중국 대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않았을까요.”

안치영 셰프의 간짜장. 본인 제공

안치영 셰프의 간짜장. 본인 제공



안치영 셰프는 남극에 가기 전, 중식 분야에서 7년을 보낸 베테랑 요리사였다.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단체 급식을 책임지기도 했다. 남극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다시 중식의 세계로 돌아왔고, 지난해 마포에 자신의 식당을 열었다. 이름은 ‘남극반점’. 남극에서의 시간을 담은 이름이다.

“지금의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열 때 남극 대원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전기도 깔아주고, 비품도 챙겨주고, 인테리어까지 함께 봐줬죠. 가게 곳곳에 대원들의 손길이 남아 있어요.”

남극의 설경을 배경으로 안치영 셰프. 본인 제공

남극의 설경을 배경으로 안치영 셰프. 본인 제공



남극반점은 간짜장과 탕수육을 중심으로 한 한국식 중식당이다. 안치영 셰프는 음식에도 ‘생(生)’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갓 만들어진 음식이 가장 살아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맛은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남극반점의 철칙은 단 하나, ‘갓 만든 음식을 낸다’는 것이다.

“대표 메뉴는 직화 간짜장이에요. 미리 만들어 둔 짜장을 붓는 짜장면은 팔지 않아요. 주문과 동시에 한 그릇을 만들죠. 간짜장은 남극 대원들이 가장 좋아했던 메뉴이기도 해요. 장사만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겠죠. 저는 장사꾼이 아니라 셰프로 남고 싶어요.”

안치영 셰프 남극반점의 ㄱ시그니처 눈꽃탕면. 본인 제공

안치영 셰프 남극반점의 ㄱ시그니처 눈꽃탕면. 본인 제공



인터뷰의 끝에서, 그는 남극행을 고민하는 후배 셰프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남극에서 셰프는 ‘엄마’가 되는 거예요. 대원들을 위해 뭐든 할 줄 알아야 하죠. 직장인 마인드로 가면 버티기 힘들 거예요. 서로를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좋은 유대 안에서 요리를 해야 해요. 남극에서의 일상은 ‘일’이 아니라 ‘삶’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