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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간판을 바꿔도 길이 바뀌지 않으면, 쇄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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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간판을 바꿔도 길이 바뀌지 않으면, 쇄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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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당원 투표로 묻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책임이다
국민의 힘은 오늘(11일)까지 사흘간 책임당원을 대상으로 당명 개정에 대한 전 당원 의견 수렴 조사를 진행한다. 8일 기준 전체 책임당원이 대상이며, 9일 오전 11시부터 전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찬반 의견을 묻는 사실상의 내부 국민투표다. 당원들의 새로운 당명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 수렴도 병행됐다. 지도부 구상대로라면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2월 중 당명을 바꿔 6·3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당의 진로를 가를 선택이 바로 지금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조사를 “당원 중심 정당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찬성 의견이 우세할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당명 공모 절차에 착수하고, 후보군 압축과 최종 선택을 거쳐 새 당명을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도부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제약도 함께 거론된다. 지방선거 일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당명 확정 이후 CI 작업까지 포함하면 최소 두 달 이상이 필요해, 실제 선거 전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명분과 일정, 기대와 현실이 어긋나 있다. 보수 정당에게 당명 개정은 낯선 선택이 아니다. 민주자유당에서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위기 때마다 간판은 바뀌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지 않았다. 한나라당 시절처럼 당명 변경 없이도 장기간 정치적 전성기를 누린 경우가 있는 반면, 신한국당처럼 2년도 채 버티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당명을 바꿔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노선과 정책, 인물과 리더십이 함께 바뀌었을 때 성과가 뒤따랐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당명 개정 논의는 근본적 쇄신으로 보기 어렵다. 비상계엄을 “잘못된 수단”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책임의 주체와 정치적 단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동시에 계엄을 옹호했던 인사와 친윤 핵심 인물들을 당 지도부에 중용했다. 이름은 바꾸겠다고 하면서 내용과 인적 구성은 그대로 둔 모순이다. 정당의 쇄신은 절차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끊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서부터 새로 출발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단어를 아끼는 방식으로 과거를 흐리면 당장은 분란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중도와 무당층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정치에서 가장 비싼 비용은 불분명함이다. 지방선거는 간판 경쟁이 아니라 책임 경쟁이다. 유권자는 더 이상 이름의 새로움에 반응하지 않는다. 어떤 가치로, 어떤 사람들과, 어떤 결단을 통해 과거와 결별했는지를 본다. 길이 바뀌지 않으면 간판을 바꿔도 목적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 끝나는 당원 조사는 그 단순한 정치의 상식을 다시 묻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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