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부담
알림 끄거나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디톡스
알림 끄거나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디톡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사회적 관심계층 생활 특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사람이 20명도 되지 않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4.9%에 달한다. 이들의 한 달 평균 연락 상대는 11.3명, 하루 외출 시간은 1.3시간에 그쳤다. |
새해를 맞아 어느 선까지 안부를 묻고, 어디까지 안녕을 빌어야 할지 고민했다. 뜸하게 연락하던 이들까지 챙기자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침묵하자니 괜히 마음이 걸렸다. 비슷한 망설임을 느꼈다면 당신은 지금 ‘관계 디톡스’를 고민해볼 타이밍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사회적 관심계층 생활 특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사람이 20명도 되지 않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4.9%에 달한다. 이들의 한 달 평균 연락 상대는 11.3명, 하루 외출 시간은 1.3시간에 그쳤다.
표면적으로 보면 사회적 고립의 신호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곧바로 단절로 해석하기에는 관계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양상이 분명 달라졌다. 관계를 끊기보다 덜 이어가는 선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끊고, ‘언팔’을 하다
직장인 고정석씨(33·가명)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유난히 피로했다. 자리가 불편했던 것도, 대화가 어색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였다. 괜히 말을 많이 한 것 같고,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닐지 혼자 곱씹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런 날의 피로는 잠을 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런 감정이 반복되자 고씨는 관계 자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관계 디톡스’를 결심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누군가와 절연하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며 “지금 내 주변의 관계들이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는 선택에 가까웠다”고 했다.
관계 디톡스는 오프라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대학생 김지은씨(23·가명)는 최근 몇달간 소셜미디어에서 ‘언팔로’를 반복하고 있다. “연결을 끊었다기보다는 계속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 선택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그는 먼저 약속 빈도를 줄였다.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에는 긴 설명 대신 “이번엔 쉬겠다”고만 전했다. 불참이 잦아지자 단체 채팅방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도 자연스레 줄었다. 관계를 끊지 않고, 관계가 차지하는 자리를 줄인 셈이다.
만남의 방식도 달라졌다. 다수의 모임 대신 한두 명과 짧게 만나고, 헤어질 때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선을 그었다. 관계가 온라인으로 연장되지 않자, 집에 돌아와 혼자 곱씹던 시간도 사라졌다. 그는 “만남에서 오는 피로보다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는 편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계 디톡스는 오프라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대학생 김지은씨(23·가명)는 최근 몇달간 소셜미디어에서 ‘언팔로’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면 괜히 신경 쓰이고, 스토리를 보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면 무례한 것 같았다”며 “누군가와 절연하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지금 내 주변의 관계들이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는 선택에 가까웠다”고 했다.
김씨는 먼저 자주 소통하지 않는 계정부터 정리했다. 이어 보고 나면 기분이 가라앉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올리는 계정도 언팔로 했다. 단체 채팅방도 정리했다. 업무와 무관한 방, 목적이 흐릿해진 모임방부터 하나씩 나왔다. 실제로 몇몇 관계는 이 과정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나 김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연결을 끊었다기보다는 계속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 선택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은성 관계 심리 전문가는 “관계를 줄이며 느끼는 불안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만 남는다면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안정이다. 관계 디톡스는 포기가 아닌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
관계 디톡스는 고립이 아니다
이런 선택은 개인의 고민에 그치지 않는다. 잡코리아·알바몬 조사에서도 성인 남녀의 87.1%가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인맥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관계의 피로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 있다. 예전의 관계 피로가 ‘만난 횟수’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상태’ 자체가 부담된다. 답장이 늦어지면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고, 반응하지 않으면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은성 관계 심리 전문가는 “관계를 줄이며 느끼는 불안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만 남는다면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안정이다. 관계 디톡스는 포기가 아닌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연락의 속도를 늦춰보는 것이다. 답장이 늦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관계가 불안해진다면, 그 관계는 이미 나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모임을 선별하는 일이다. 모든 약속에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다. 빠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외로움인지, 아니면 관계 유지에 대한 압박인지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관계 점검도 빼놓을 수 없다. SNS 팔로 목록, 단체 채팅방, 자동 저장된 연락처까지 관계는 오프라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꼭 끊지 않더라도 알림을 끄거나 한발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디톡스가 된다. 마지막은 거절 연습이다. 정중한 거절은 냉정함이 아니라 자기 존중에 가깝다. 마음에 없는 “괜찮아요”를 반복할수록 관계는 유지되지만, 피로는 쌓인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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