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민아 제공 |
[OSEN=서초동, 정승우 기자] "축구가 다시 재밌어졌어요."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팀의 역사적인 첫 골도 넣었다. 하지만 대표팀과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보낸 이민아(34, 오타와 래피드 FC)의 2025년은 '성공'과 '질문'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간이다.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성과를 말하기보다, 왜 떠났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했다.
8일 저녁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이민아를 만났다. 캐나다에서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었다. 빈틈 없는 시즌을 소화한 뒤였고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한 이민아는 대화가 시작되자 다시 자연스럽게 축구로 향했다. "이제 좀 쉬다가 다시 운동을 시작했어요." 짧은 근황 인사 뒤에는 그가 보낸 지난 1년의 밀도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민아는 한국 여자축구를 대표해온 미드필더다. 인천 현대제철에서 WK리그의 전성기를 함께했고, 일본 무대와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한 시대를 책임졌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 이미 이룰 만큼 이룬 커리어였지만, 그는 다시 익숙한 환경을 떠났다. 안주보다는 도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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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이민아에게 '다시 해외'라는 선택으로 기억될 해다. 2025년 새롭게 출범한 캐나다 노던 슈퍼 리그(NSL), 그리고 오타와 래피드 FC. 신생 리그, 신생 팀, 기준도 선례도 없는 무대에서 그는 오타와의 공식전 첫 골을 기록하며 시즌의 문을 열었다. 팀은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이민아 개인 역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한 해였다.
그 숫자들만으로 2025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익숙했던 대표팀과는 거리가 느껴졌고, 커리어 후반부에 접어든 선수로서 고민해야 할 질문들도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축구가 다시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국내 무대와는 다른 템포, 피지컬, 경쟁의 밀도 속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날 대화는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왜 다시 떠났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여전히 축구를 붙잡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민아의 2025년은 그렇게, 기록보다 선택과 감정으로 설명되는 한 해였다.
OSEN과 만난 이민아는 "시즌 중 잔부상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큰 부상 없이 시즌을 마쳤고, 팀 역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라며 한 해를 요약했다. 다음은 이민아와 일문일답.
▲ 시즌이 끝났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시즌 끝나고 한국 들어와서 좀 편하게 쉬다가, 이제 다시 운동을 시작해서 하고 있어요.
▲ 시즌 중과 비교했을 때, 지금 몸 상태나 마음가짐은 어떤가요.
-시즌 중간중간 잔부상 같은 건 있었는데 하다 보니까 괜찮았고요. 시즌을 부상 없이 잘 끝냈고, 팀도 그래도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캐나다 생활은 이제 좀 익숙해지셨나요.
-익숙하다기보다는...외국 생활이니까요. 캐나다에서는 딱히 할 게 별로 없어요. 쉬는 날에도 거의 집에만 있고, 가끔 산책 정도만 하고요. 대신 한국 분들이 많이 계셔서 많이 도와주시고, 밥도 불러주시고 해서 너무 감사하게 지내고 있어요.
▲ 집으로 초대받아서 한식도 많이 드셨다고요.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면요.
-친한 한국 마트 사장님 댁에 몇 번 초대받았는데, 고기 구워주셨을 때요. 삼겹살도 구워주시고, 사모님이 여러 음식 해주셨는데 다 너무 맛있었어요. 정말 감사한 분들이에요.
▲ 팀 이야기를 해볼게요. 오타와 래피드는 신생팀인데 정규시즌 2위,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했습니다. 2025년을 축구적으로 돌아보면 어떤 해였나요.
-냉정하게 보면 선수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저희보다 더 강한 팀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코치진, 스태프들이 전술을 잘 짜주셔서 팀 색깔이 분명했고, 패스로 풀어가려는 축구가 잘 됐어요. 포워드가 마무리도 잘해줬고요. 그런 게 모여서 좋은 성적을 낸 것 같아요.
▲ 국내 팬들에겐 팀이 낯설 수도 있습니다. 오타와 래피드는 어떤 팀인가요.
-캐나다 수도에 있는 팀이에요. 캐나다라고 하면 보통 토론토나 밴쿠버를 떠올리는데, 오타와는 비교적 작은 도시예요. 다른 팀 선수들이랑 얘기해보면 "너네 팀 플레이 좋다", "패스 축구라서 부럽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 색깔이 있는 팀인 것 같아요.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요.
▲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나요.
-세밀함이요. 피지컬이나 스피드, 공수 전환은 정말 빠른데, 그 안에서의 디테일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 세밀함이 더해지면 훨씬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베테랑으로서 한 시즌을 보내며 '이건 배웠다' 싶은 게 있다면요.
-저는 축구를 볼 때 항상 부족한 점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어요. 더 발전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캐나다 선수들이나 유럽 선수들을 보면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보더라고요. 저는 수비 위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은 공격이 잘됐다고 먼저 생각해요.
제가 너무 스스로를 냉정하게 괴롭혀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점을 더 봤다면 실수를 해도 더 빨리 잊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실수에 너무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 그 시각을 더 어릴 때 배웠다면 좋았을까요.
-너무 장점만 봐도 발전이 느려질 수 있으니까 반반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너무 부족한 점만 봐왔어요.
[사진] 이민아 제공 |
▲ 첫 시즌이었고, 팀의 '역사상 첫 골'도 넣으셨습니다. '지난 시즌'이라는 기준이 없는 '첫' 시즌이라 부담은 없었나요.
-아시아에서 온, 작고 왜소한 선수라서 '쟤 잘할까?'라는 시선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훈련하고 경기를 하다 보니까 "너랑 축구하는 게 재밌다", "같이 뛰고 싶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죠.
사실 첫 경기 전에 근육 상태가 안 좋아서 쉬다가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감독님이 믿고 바로 투입해 주셨어요. 그 믿음에 보답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어요.
▲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됐지만 대표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심정은 어땠나요.
-어려웠죠. 소속팀 동료 선수들도 종종 이야기해요. "넌 왜 대표팀에 안 가냐."
제가 봐도 제 경기력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 시기에는 제가 생각해도 제 축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못 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캐나다 진출 후 키도 크고, 몸도 좋고, 덩치가 큰 선수들을 상대로 조금씩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아, 나도 아직 발전하고 있구나', '그래서 이 도전을 선택한 게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캐나다 리그는 6팀으로 팀 수는 적지만 경쟁이 치열합니다. WK리그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요.
-맞아요. 치열해요. 1등과 6등이 붙어도 쉽지 않아요. 홈에서는 강하고, 원정 가면 또 다르고요. 그래서 매 경기 긴장감이 있어요. 물론 1위 팀과 6위 팀의 전력 차이는 있어요. 그래도 경기는 쉽지 않아요. 홈에서 5-1로 이긴 팀도 원정에 가니 0-1로 졌거든요. 홈에서는 모두가 강한 거죠.
▲ 낯선 환경에서 보낸 한 시즌이었는데, 보다 치열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재미는 다시 찾으셨나요.
-네, 재밌었어요. 진짜 재밌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딱 느꼈던 게, '아 이게 템포가 맞지'라는 생각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해봐야지' 생각했던 게 안 됐는데, 여기 오니까 이 템포에서는 그게 되더라고요. 아, 이게 되는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그래서 축구가 재밌었고요. 그냥 경기를 뛰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 템포에서, 이 피지컬에서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이런 게 느껴지니까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 해외에 나가려는 후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을 해준다면요.
-일단 나가기 전에는 무조건 영어가 먼저인 것 같아요. 그건 진짜 중요해요. 그리고 나가서는, 나가는 것 자체보다 버티는 게 더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 보면 해외에 오래 있었던 선수들 있잖아요. (지)소연 언니도 그렇고, 북미에서 오래 있었던 선수들도 그렇고요. 그게 진짜 대단한 거예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게 있거든요.
외롭다, 이런 한 단어로는 안 되는 느낌이에요. 뭔가...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인데, 그걸 다 버텨야 되는 것 같아요.
후배들도 많이 나오려고 하고, 실제로 나오기도 하는데, 나가는 것도 어렵지만, 나가서 버티는 게 진짜 쉽지 않아요. 근데 그건 결국 버텨야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진] 이민아 제공 |
▲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나요.
-집 앞 카페가 한국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우연이었는데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한국말로 대화하고, 한식도 챙겨주셔서 공허함을 많이 덜 수 있었어요. 저는 인복이 있다고 느껴요.
■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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