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때는 인터뷰 못한 NYT, ‘앙숙’ 트럼프는 2시간 받아줘
“대만 문제는 시진핑이 결정할 일, 내 임기 중 침공 않을 것”
“대만 문제는 시진핑이 결정할 일, 내 임기 중 침공 않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자신의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뉴욕타임스(NYT) 기자 4명과 약 2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NYT는 이날 인터뷰가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 총격 사건부터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향후 전략,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방안, 백악관 리모델링 계획 등 다양한 국내외 현안을 망라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진보 진영을 상징하는 NYT는 트럼프를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매체다. 트럼프가 주류 언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NYT를 “타락한 극좌 신문”이라 비판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지난해 100억 달러(약 14조5200억원) 짜리 명예 훼손 소송도 제기한 상태지만, 이번 인터뷰는 비판적 언론과의 문답도 회피하지 않는 트럼프식 언론관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NYT가 공개한 인터뷰 사진을 보면 집무실 내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에 트럼프가 있고 맞은편에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NYT의 졸란 카노-영스·타일러 페이저·케이티 로저스·데이비드 생어 기자가 앉아 있다. 모두 정치, 외교·안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언론인들이다. 이들 뒤로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의 모습도 보인다. 친(親)민주당 매체로 인식되는 NYT는 막상 바이든 정부 때는 미운털이 박혀 단 한 번도 대통령을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는데, 트럼프 정부 들어 ‘대특종’을 낚게 됐다. NYT는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공식 기록에 남을 대화였다”며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활기차고 열정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관저도 직접 안내했다고 한다. 이날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요원이 백인 여성을 살해한 것이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됐는데, 트럼프가 자신의 보좌관 나탈리 하프를 불러 ‘슬로우 모션’ 영상까지 노트북으로 재생을 시켜가며 취재진에게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란 취지로 설명했다.
인터뷰에서 NYT 기자들은 백악관 참모들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원하는 질문을 대부분 던졌다고 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최고 사령관’으로서 자신이 행사하는 권한은 오직 “자신의 도덕성(my own morality)에 의해서만 제한된다”며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나에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고도 했다. 그는 미 정부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지만, 미국에 제약이 되는 상황일 경우 결정권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어떻게 국제법을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주권이나 국경 같은 국제법에 대한 특유의 경시적 태도를 드러낸 대목으로 보인다. NYT는 이를 두고 강대국이 충돌할 때 법과 조약이 아닌 국가의 힘이 결정 요인이 돼야 한다는 트럼프의 세계관을 가장 노골적으로 인정한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월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를 방문한 J D 밴스 부통령이 차량 행렬 모습. /AP 연합뉴스 |
트럼프는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이미 미군 기지 사용 권한이 있는데 왜 소유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소유권은 임차나 조약만으로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준다” “그것은 성공을 위해 심리적으로 필요하다”며 부동산 디벨로퍼 출신 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이런 행보를 놓고 유럽 우방국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그린란드 확보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유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하지 않으며 “선택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밖에 중국이 대만에 대해 행동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 여기고, 무엇을 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이라며 “그러나 그가 (침공을) 하면 매우 기분 나쁠 것이라 얘기했다. 다른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는 몰라도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은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은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경우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달리 유사시 미국의 역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남은 마지막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新)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다음 달 5일 만료되는 것에 대해서는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이고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조약이 만료되면 미·러 간 핵무기 증강에 고삐가 풀릴 수 있는데, 트럼프는 중국을 포함한 새 협정이 필요하다 보고 있다.
J D 밴스 부통령이 8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NYT는 “기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추궁하자 트럼프가 보좌관들을 불러 공식 문서와 인쇄물, 옛 이스트윙 자리에 짓고 있는 연회장 축소 모형 등을 가져오게 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해 자신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기사를 썼던 한 기자를 콕 집어 “나는 (인터뷰를) 9시간도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트럼프가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비보도)’를 전제로 NYT 기자들도 전화 회담을 청취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비보도라 하더라도 취재진, 그것도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의 기자들을 정상 간 통화 자리에 배석을 시킨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이날 통화에는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있었는데 통화가 종료되자 두 사람이 자리를 뜨고 다시 인터뷰가 재개됐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트럼프가 이민 정책, 그린란드 ‘소유권’의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에 질문했다”며 이번 인터뷰 전문(全文)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한편 기사, 동영상, 팟캐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주류 언론에 대한 트럼프 진영의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다. 백악관 취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언론인들의 힘을 빼겠다며 매가 진영에서 인기가 높은 인플루언서들에게도 대거 출입 문호를 개방했다. 이날도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계속 나자 연단에 오른 밴스가 “CNN이 나를 망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없지만 어림도 없다”고 농담을 했다. ICE 요원 총격 사건에 대해 묻는 한 기자에게 “진실을 보도해야지 어떻게 극단주의 세력의 선전 도구가 돼 우리의 법 집행을 방해할 수 있냐”며 훈계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요 당국자들은 CNN·MS NOW(옛 MSNBC) 같은 진보 성향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설명하고 그 당위성을 얘기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트럼프 반(反)이민 정책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진행자와 다투는 것이 다반사지만 그런데도 언론 출연을 피하지 않는다. 가장 ‘모범적’이라 할 수 있는 건 트럼프인데 집무실 행사, 전용기 안, 헬기 탑승 전과 후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른바 ‘개글(gaggle)’이라 불리는 즉석 문답을 진행해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있는 곳이 곧 기자회견”이라는 농담 섞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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