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정동칼럼]‘탈팡’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정동칼럼]‘탈팡’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서울맑음 / -3.9 °
작년 여름, 나는 중국에서 구글 없는 며칠을 보냈다. 중국은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연결망을 차단하고 있고, 당연히 유튜브도 볼 수 없었다. 강제로 주어진 ‘탈구글’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이 얼마나 구글이라는 포위망 안에서 살아왔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몇달 후, 쿠팡 사태를 보며 분노한 나는 ‘탈팡’을 했고, 다시 한번 내가 쿠팡이라는 플랫폼에 습관적으로 접속해왔다는 것을 자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서서히 끓는 가마솥 속 개구리처럼, 나의 정신과 육체적 욕망은 철저히 계산된 플랫폼 자본주의에 의해 알고리즘화되었으며, 일상적 선택은 구글과 쿠팡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었다. ‘탈옥’ 이후 구글과 쿠팡 없이 살아보는 일상은 나름의 해방감을 주었다.

구글이나 쿠팡과 달리, 인공지능(AI) 플랫폼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비록 전통적 플랫폼 경제와 달리 AI 플랫폼 경제는 지식 생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다루며, 아직 이익 실현이 불확실하다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동일한 구조를 공유한다. AI가 야기하는 ‘가마솥 개구리’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그 파장은 보다 근본적이다. 단순히 검색하거나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 일부를 외주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과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층에서 나타나는 AI 의존 현상은 앞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AI가 업무 성과에 개입하게 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성실, 진정성, 노력과 수행성의 가치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전체적으로 플랫폼 자본주의는 우리 일상을 뒤바꾸고 있다. 플랫폼 경제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여러 개념들, 예컨대 감시 자본주의, 데이터 식민주의, 알고리즘 통치, 디지털 판옵티콘 등의 개념은 개인의 욕망, 판단, 선호를 지속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이를 알고리즘적 추천, 예측, 유도라는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플랫폼의 근본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회는 물리적 장벽이나 명시적 억압이 없는 대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율을 통해 인간의 삶을 관리하는 일종의 ‘디지털 감옥’과 같다. 이 힘은 폭력이 아니라 유혹을 통해 지배하며, 영혼을 파괴하기보다는 행동 패턴을 학습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영혼을 잠식한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가마솥 개구리’ 현상은 이미 일상화되었다. 인간은 기계의 일부가 되었고, 기계가 만든 어셈블리지 안에 포섭되었다. 지하철 승객들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보의 사슬을 통해 기계가 조종하는 ‘좀비’처럼 행동한다. 영화 <매트릭스>가 묘사한, 인간이 기계에 사육당하는 세계는 이러한 관계를 잘 투사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서 ‘탈옥’해야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탈구글’이나 ‘탈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플랫폼 전체를 통제하는 거대 지식자본의 판옵티콘을 소수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글이나 쿠팡이 플랫폼을 지배하는 ‘통치 방식’에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의 제도화 과정이 필요하다. 규제는 풀어야 하지만,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도 있는 법이다. AI를 포함한 정보 플랫폼은 너무나 크고 근본적이어서 민간에만 맡겨둘 수 없다. 사회적 거버넌스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초국가적인 소수 민간 독점기업들이 그러한 민감한 정보와 테크놀로지를 담은 플랫폼 경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버린 AI를 말하는 것처럼, 그 지배 방식에 공공성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공공성의 지배가 개입할 법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돌아보면, 인간은 물질과 연결된 생태계 안에 살고 있고, 물질 속에서 따로 ‘인간’만을 떼어낼 수는 없다. 다만 물질이 인간을 숙주화하는 것을 통해 인간성이 좀비화하는 방식으로 자본이 축적되는 경제체제에는 찬성할 수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사고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이미 설계된 선택지와 가시성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게 되며, 감시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편의와 효율의 이름으로 내면화되는 플랫폼의 속성은 인간을 물질 아래 두게 만들고, 자본 축적의 먹잇감이 되게 한다. 쿠팡이 오만하게 구는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다.


이제 ‘무엇이 진보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고민할 때이다. 진보를 상징했던 서양의 역사관에 대해 중국의 역사학자 위잉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서양의 위기는 동(動)적이면서도 정(靜)적이지 못하고, 발전(進)은 있지만 그침(止)이 없고, 부유(富)하지만 편안(安)하지 못하고, 혼란(亂)스러워 안정됨(定)이 없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