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공포를 느낀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그런데도 인간이 사는 사회에 '폭력'은 상수다. 커가는 아이들의 터전 '학교'도 은밀한 폭력에 물들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폭력을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걸까.
식물도 자신을 해하려는 외부의 위협에 반응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다 급커브 길에서 넘어진 적이 있다. 왼쪽 다리에서 피가 흐를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그때의 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이 입은 상처에 민감하다. 상처받을 만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받는 상처에도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일까.
학교폭력(이하 학폭)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자신을 따돌린 사회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으로 짐작할 때 우리는 아직도 남의 상처에 무감각한지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한국인 재미교포 1.5세대 출신의 버지니아공대 재학생이었다. 원인은 미국사회 부적응에서 기인한 스트레스와 학폭으로 대표되는 '왕따'였다고 한다.
왕따에서 초래된 비극
2025년 10월엔 미국 조지아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살던 11세 한인 학생 '에이든 이'군이 학폭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에이든은 언제나 우리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아이였다"며 "아이가 가슴 아픈 선택을 할 때까지 겪은 외로움과 공포에 가슴 아프다"는 입장을 내놨다. 더불어 "아들이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과 학대를 당했다"며 "학폭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학폭 상처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 2012년 개정한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에 '따돌림'과 '사이버 따돌림'을 학폭에 포함하고, 2024년 개정을 통해 사이버 따돌림을 '사이버 폭력'으로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사이버폭력 피해학생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은 47.5%에 달했다(푸른나무재단 2025년 2월 발표). 이는 전체 피해학생 평균인 38.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런데 이런 법 규정으로 얼마나 '따돌림'이나 '사이버 폭력'과 같은 학폭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클리브 백스터는 거짓말탐지기 연구가다. 그는 거짓말탐지기를 '드라세나'라는 식물에 연결했다. 식물의 안녕을 위협했을 때 식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확실하게 위협하려면 잎을 성냥불로 태우면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당시 백스터와 드라세나는 5m쯤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잎사귀를 태워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거짓말탐지기의 기록바늘이 기록지 맨 끝까지 올라갔다. 잎사귀를 태워야겠다는 뚜렷한 의도를 가졌을 뿐인데 식물이 극도로 흥분한 거였다.
이렇게 식물이 단순한 의도에도 공포를 느낀다면 동물은 어떠하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내가 받는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받는다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장구한 역사적 산물이다.
인간이 태초에 창조된 이래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다시 자식을 낳아 현재까지 왔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인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돼 있고, 부족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학폭을 포함한 모든 폭력이 존재해선 안 될 이유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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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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