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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유착’ 극우가 민주주의를 삼키고 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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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유착’ 극우가 민주주의를 삼키고 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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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산하단체 천주평화연합(UPF) 송광석 전 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교 산하단체 천주평화연합(UPF) 송광석 전 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우 | 변호사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른다. 헌법적 가치 안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이른바 ‘극우’는 보수의 탈을 쓴 채 헌법적 기초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들은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정교 분리의 원칙을 무시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다. 이는 건전한 보수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반헌법적 병리 현상’이다.



한국 극우의 뿌리는 깊고도 기형적이다. 건국 초기 이승만 정권은 반공주의를 국시로 내세워 사실을 왜곡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조봉암 처형 사건은 그 비극적 서막이었다. 기본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무시한 종교와 권력의 야합이다. 이승만은 개신교에 독점적 혜택을 부여하며 정치적 기반을 닦았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종교 권력의 정치 세력화라는 독버섯을 키웠다. 국가 조찬 기도회와 같은 관행이 버젓이 유지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정교 분리 원칙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방증한다. 현재 특검이 통일교와 정치권의 유착 관계를 수사 중에 있다. 유착 관계가 사실이면 정교 분리를 위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에도 극우가 득세하는 배경에는 경제적 양극화라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상위 10%에 부가 집중된 국가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로 중산층은 붕괴했고, 고학력임에도 저숙련 일자리로 밀려난 청년들은 모멸감과 배제감에 휩싸였다. 지적 성찰을 통해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낼 여유를 상실한 소외 계층에게, 극우 선동가들은 달콤한 독약을 건넨다. 자신의 불행을 사회 구조가 아닌 여성, 성소수자, 중국인 등 사회적 소수자 탓으로 돌리게 만드는 ‘혐오의 정치’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극우화의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이후 미국의 극우가 부유층의 시스템을 옹호하면서도 백인 우월주의와 반이민주의로 대중의 분노를 치환했듯, 한국의 극우 역시 미국의 극우세력과 이념적, 재정적으로 동조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문제는 전통 보수정당마저 이들의 목소리를 선거에 이용하며 스스로 극우화한다는 점이다. 헌법 정신을 수호해야 할 정당이 계엄과 같은 반헌법적 행태를 옹호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국가적 위기다.



이제 우리는 다시 헌법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혐오가 정치가 되고, 종교가 권력이 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선 사회적 소외 계층의 목소리가 합리적으로 제도권에 수렴될 수 있도록 대선거구제 도입 등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실질적 정책과 더불어,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사회적 응징 체계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다원주의와 정교 분리라는 헌법의 가치를 세대 전반에 깊이 이식해야 한다. 합리적 관행과 토론을 존중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의 숙의 과정을 통해 독재와 선동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헌법을 무시하는 극우의 발흥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이 거대한 퇴행의 물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쌓아온 민주적 성취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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