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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물류, 120명의 선화씨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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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물류, 120명의 선화씨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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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연기면의 한국지엠 세종부품물류센터에서 점거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금속노조 지엠부품물류지회 제공

세종 연기면의 한국지엠 세종부품물류센터에서 점거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금속노조 지엠부품물류지회 제공




김용태 |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엠세종물류지회장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화 이모님. 그는 지엠(GM)세종물류 공장에 입사한 지 23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왕고’입니다. 그는 한국지엠의 세종물류센터가 들어오기 훨씬 전, 그러니까 여기가 처음에 방직공장 부지였을 때부터 평생 이곳을 지켜온 사람입니다. 17살에 방직공장으로 처음 입사해 이 지역에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공장 구석구석, 문지방 켜켜이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에게는 삶의 궤적이 그대로 들어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모님이 고작 정년을 1년 앞두고 쫓겨났습니다. 새해 첫날 집단해고를 하루 앞두고 그가 저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습니다. “한평생 공장에 다녔는데 나는 그래도 지금이 제일 행복해.” 그러면서 제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항진이는 지난해 4월에 입사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최고 막내입니다. 한국지엠이 지난가을 발탁 채용으로 정규직화해준다고 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동차 기업 정규직이라니요. 항진이는 이제 결혼도 하고 작은 집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항진이가 정규직화와 함께 불법 파견 기간의 임금보상을 요구하는 노조와 동행하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누구는 무모하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 객기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노조 결성 과정에서 보았던 간절함과 진심을 믿어보기로 했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주말 조합원 가족들이 해고자 농성장에 다녀갔습니다. 가족들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조합원들 얼굴이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농성으로 수척하고 그늘졌던 조합원들 얼굴에 이내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안고는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고, 뭐 하러 왔냐며 면박을 주면서도 이내 눈시울이 촉촉해지곤 했습니다. 저에게도 8살짜리 딸아이가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놀아달라며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곧 돌아간다고 했지만 기약 없는 약속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누가 속 시원하게 말 좀 해주십시오. 우리 조합원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누가 무슨 권리로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을 빼앗아갑니까. 왜 노동자들이 이 추운 겨울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자야 하는지 누가 설명은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하루아침에 ‘사내하청 도급계약 해지’라는 명분으로 120명의 조합원을 쫓아냈는지, 이제 한국지엠은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120명의 선화 이모님, 120명의 항진이가 되어 굳건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표로 갈라치고, ‘발탁 채용’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흔들어 댑니다. 하지만 차가운 농성장에서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깨달았습니다. 노조를 흔들기 위한 사쪽의 시혜보다 곁에 있는 동료의 손이 훨씬 더 따뜻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6개월 만에 거리로 쫓겨난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조차 허락되지 않는 권리 밖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십수년간 최저임금에 허덕이면서도 군말 한마디 못 했던 ‘무지렁이’들이 아닙니다. 강제로 휴가를 뺏기고 근로기준법이 짓밟혀도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그 ‘바보 천치’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나의 권리와 우리의 가치를 똑똑히 아는 ‘노동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한국지엠의 오만함에 맞서겠습니다. 이 처절하고도 당당한 싸움을 응원해주십시오. 이 시린 겨울을 녹일 수 있는 온기를 모아주십시오. 비정규직도 노조 할 수 있는 세상,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연대의 힘을 모아주십시오. 나와 내 동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일터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 함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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