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4’(JT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필리핀 출신의 그윈 도라도. 제이티비시 제공 |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칼럼을 쓰면서 노래를 듣고 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4’(JTBC)에서 59호 가수가 부른 ‘세월이 가면’이다. 이후 밝혀진 이 가수의 이름은 그윈 도라도, 필리핀 출신 외국인이다. 도라도는 1988년에 발매된 한국 노래를 거의 완벽한 발음과 감정으로 불렀다. 어제까지 계속된 경연에서 ‘1994년 어느 늦은 밤’, ‘환생’, ‘기억의 습작’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노래를 자기 색깔로 소화하며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았다. 마지막 무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지만 인기투표에서 밀려 아쉽게 2위에 올랐다.
얼마 전까지 내 알고리즘을 점령한 또 다른 챌린지는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한’이었다. 중독적인 멜로디에 경쾌한 춤이 더해져서 한번 보면 멈추기 어렵다. 이 밈의 원조도 한국 사람이 아니다. 세네갈계 프랑스인 카니가 한국어 공부를 재미있게 해보려고 만든 랩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끈매끈하다” 뒤에 나오는 “평평하다”는 카니식으로 “푱푱하다”라고 불러야 맛이 산다. 이 밈이 너무 중독적이라 지난해 수능 전에는 수험생 금지곡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도라도는 10년 전 ‘아시아 갓 탤런트’에서 결승에 진출했던 실력파 가수고, 카니 역시 미국에서 여러 가수와 협업했던 유명 댄서다. 재능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활동하려 하는 건 아마도 우리 문화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이들이 한국에서 자기 잠재력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한국인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풍성해진다. 외모와 문화가 다르다고 외국인들을 배척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호사다.
도라도와 카니는 문화예술 분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의 체류 외국인은 273만명으로 총인구의 5%를 넘었다. 이 중 취업비자 자격으로 약 60만명이 입국해 있고,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재외동포 중 취업자까지 합하면 약 110만명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외국인 취업자 가운데 전문인력과 단순기능인력이 섞여 있지만, 이들이 지역경제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지고 내국인의 빈자리를 채워준다는 점은 동일하다. 예컨대 거제와 울산의 조선소가 오랜만에 수주 호황을 맞으며 일할 사람이 모자라지자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돼 생산을 뒷받침했다. 파종기와 수확기 농촌에서도 외국인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질 않는다.
가장 재능 있는 사람이 국경에 갇히지 않고 자기 전문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정착할 사회에도 유익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수십년간 정치, 경제, 산업, 문화, 의료 분야에서 이룩한 눈부신 성취로 인해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 한국행을 선택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가 이들을 더 잘 포용할 수 있게 준비된다면, 더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와 우리 경제와 사회와 문화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도라도와 카니는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수많은 실증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민자가 유입되면 지역경제의 노동시장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생산성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수용국 경제가 고도화된 곳에는 가장 유능한 외국인 인재가 몰려들면서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창출한다. 예컨대 미국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어느 논문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의 경우 내국인 단독 창업 때보다 고용 규모가 44% 증가하고 자금 유치 확률도 35%포인트 높았다고 추정했다. 또 다른 연구에선 출신지 구성이 다양한 팀이 학술논문 출판이나 기업 운영에서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국적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인재를 쓰면 결과가 좋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을 포용하자는 주장은 단순한 선의의 발로가 아니다. ‘리버럴의 위선’과도 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철저한 손익 계산의 결과에 가깝다. 사람이 국경과 국적이라는 한계를 넘을 때 얻는 이익이 그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제도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손해를 고르게 분담하면 이민의 부작용을 더 작게 만들 수도 있다. 더 많은 도라도, 카니들이 자기 색깔을 내며 우리 사회에 섞여든다면 함께 누리는 삶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민족과 국적의 경계에 갇혀 이 유익을 포기할 이유는, 내가 보기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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