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 유방암·父 의료사고로 잃고 10대 소년 가장
29세에 월가CEO 올라 억만장자 등극
9·11로 동생 잃고 다시 한번 인생 전환점
동맹 앞에서도 돌직구 “포장없는 갈취” 평가
트럼프와 30년지기…“러트닉은 진짜 MAGA”
비트코인 전도사, 1억弗 투자 이해충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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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30년지기…“러트닉은 진짜 M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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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 중 한 명. 강경한 대중(對中) 통상 전략의 핵심 설계자. 그리고 트럼프의 ‘믿을맨’으로 꼽히는 월가 억만장자. 주인공은 바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다.
“통상 전문가 아냐”…‘공격적 협상가’ 평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지난해 9월 뉴욕의 국립 9·11 기념관 및 박물관에서 열린 9·11 테러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 중 한 명. 강경한 대중(對中) 통상 전략의 핵심 설계자. 그리고 트럼프의 ‘믿을맨’으로 꼽히는 월가 억만장자. 주인공은 바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다.
“통상 전문가 아냐”…‘공격적 협상가’ 평가
뉴욕 금융회사 캔터 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이었던 러트닉 장관은 약 21억달러(약 2조9000억원)의 자산가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고율 관세 정책을 총괄하며 미국 통상정책의 방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과 일본이 관세 합의 과정에서 약속한 대미투자 7500억달러(약 1107조원)의 첫 용처가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가 될 것이라고 밝혀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이어 지난달 15일(현지시간)에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고려아연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산업기반을 재건하며 해외 공급망 의존을 끝내는 획기적 핵심 광물 협정을 성사시켰다”며 “오늘 우리는 한국의 고려아연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에 최첨단 핵심광물 제련·가공 시설을 짓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미국의 큰 승리’”라고 적었다.
이어 지난달 15일(현지시간)에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고려아연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산업기반을 재건하며 해외 공급망 의존을 끝내는 획기적 핵심 광물 협정을 성사시켰다”며 “오늘 우리는 한국의 고려아연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에 최첨단 핵심광물 제련·가공 시설을 짓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미국의 큰 승리’”라고 적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을 주도하는 러트닉 장관이지만 실제 그는 ‘전문적인 통상협상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시사지 뉴요커는 여러 협상가들을 인용해 “러트닉의 협상 방식은 공세적이며 단도직입적”이라며 “그는 자신이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시키는 걸 좋아한다”고 평가했다.
한 통상전문가는 “러트닉은 상대가 동맹인지 아닌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며 “갈취에 가까운 요구라도 숨기지 않고, 포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협상가는 “러트닉은 테이블에서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계속 말한다”고 전했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오른쪽)이 청년 시절 친동생 게리 러트닉과 촬영한 사진. 러트닉이 CEO로 있던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파트너로 근무하던 게리는 9·11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엑스(X·옛 트위터)] |
母 유방암·父 의료사고…10대에 집안 책임진 소년
러트닉은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전형적인 롱아일랜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러트닉의 어머니는 미술 교사, 아버지는 역사 교수였다.
그는 부모님을 잇달아 여의면서 일찍부터 가장 역할을 떠맡게 됐다. 1961년 뉴욕주의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다.
1979년에는 펜실베이니아주 하버포드 칼리지 경제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첫 주에 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맞았다. 그의 아버지는 병원의 실수로 치명적인 용량의 항암제를 투여받아 사망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러트닉과 남매들은 친척들의 돌봄도 받지 못했다. 그는 젊은 가장으로 집안을 지탱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15세 동생과 20세 누나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부모님의 사망 이후 “요리를 하지 못해 매일 박스 마카로니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그의 회고는 미국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러트닉이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한 해인 1983년, 그는 캔터 피츠제럴드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했다. 캔터 피츠제럴드는 투자은행, 주식·채권 세일즈·트레이딩, 기업·산업 리서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다.
이곳에서 커피 심부름부터 시작한 그는 옵션투자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고속 승진을 했다. 1991년 29세의 나이로 피츠제럴드의 사장 겸 CEO로 임명됐고, 1996년에는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미국인들이 러트닉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또 다른 결이 있다. 그는 9·11 테러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캔터 피츠제럴드 본사는 뉴욕시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101~105층에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인 알카에다의 테러범들은 비행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는 초유의 테러를 자행했다. 켄터 피츠제럴드만 해도 전체 직원의 70%인 658명이 이 테러로 숨졌다. 그중에는 같은 회사에서 그의 파트너로 근무했던 동생 게리도 있었다.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 시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오른쪽)과 장남 카일 러트닉. 이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당일 촬영된 것인데, 이날 러트닉은 아들의 유치원 등원 첫 날을 함께했고 그 덕에 9·11 테러로 인한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엑스(X·옛 트위터)] |
사고 당시 러트닉은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사무실에 없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러트닉은 사고 당시에 대해 엑스(X·옛 트위터)에 “아들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지만 받을 때마다 전화가 끊어졌다”며 “나중에야 그 전화가 게리가 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누이와 통화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고 회상했다.
테러 직후 그는 전국 방송에서 직원을 잃은 슬픔에 흐느끼는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매정한 ‘월가의 늑대’(탐욕스럽고 공격적인 투자자를 일컫는 말) 같은 면모로도 논란이 됐다. 테러 4일 만에 아직 사망자를 정확히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실종 직원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단해 매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신 그는 구호재단을 설립해 모은 돈과 자기 재산으로 9·11 희생자 유족에게 1억8000만달러(약 2658억원)를 지원했다.
회사 이름을 딴 구호 기금을 설립하고, 9·11 테러를 포함한 재난 피해자에게 3억5000만달러(약 5169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등 광범위한 자선 활동을 펼쳤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 사이에선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도 각인돼 있다.
러트닉은 9·11 테러 20주년이었던 2021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9·11 이전과 이후로 제 인생이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처는 너무 생생해서 마치 어제 벌어진 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며 “친구를 잃고, 부모를 잃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조차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인간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문제였다”고 했다.
캔터 피츠제럴드는 전자거래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직원을 많이 잃었는데도 업무를 금방 재개할 수 있었다. 러트닉은 순식간에 직원의 3분의 1을 잃었지만 절치부심해 9·11 당시 2000명 수준이었던 직원을 1만3000명으로 늘렸다.
러트닉은 자신의 회사에 다니던 한 직원이 9·11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그 아들이 훗날 입사한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했는데 “이게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었겠나”,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 중 하나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러트닉은 CEO로 재직하면서 9·11 테러 추모일 때마다 뉴욕의 본사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직원들 모두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마움을 전했고, 유족들을 위한 사적인 추모식도 열었다.
트럼프와 30년인연 “러트닉은 진짜 마가(MAGA)”
러트닉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상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지난해 2월 피츠제럴드의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트럼프와의 인연은 30년 전 뉴욕의 한 자선행사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뉴욕에서 열린 각종 행사에서 마주치면서 친해졌다. 트럼프는 그를 두고 “러트닉은 지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역동적인 인물이었고, 위기를 극복하는 회복탄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러트닉에 대해 “하워드는 일반적인 월가 인사가 아니다. 그는 진짜 MAGA(트럼프 지지자)”라며 “그의 관세 철학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는 우리 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9·11 테러를 계기로 트럼프와 ‘뉴욕의 비즈니스맨’이란 공통점으로 의기투합했다. 러트닉은 과거 인터뷰에서 “테러 이후 트럼프는 매우 친절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2년 동안 러트닉이 트럼프를 위해 기부하거나 모금한 돈은 7500만달러(약 1050억원) 이상이다.
러트닉은 2008년 트럼프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계기가 된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했다. 러트닉은 관세에 부정적인 월가 금융 재벌들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약을 열렬히 옹호해왔다.
비트코인 ‘전도사’…이해충돌 논란도
월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CEO인 러트닉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친화적이다. 그는 “비트코인도 금과 석유처럼 상품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인수합병(M&A) 중개 등을 전문으로 하는 그의 회사는 스테이블코인인 ‘테더’의 자산도 관리한다.
가상화폐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꾼 사람도 러트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기간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삼겠다”, “미국이 비트코인 슈퍼 파워가 되게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 역시 러트닉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러트닉이 비트코인 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사인(私人)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공직으로 자리를 옮긴 이상 특정 자산에 투자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료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이 운영하는 캔터 피츠제럴드는 비트코인 펀드와 AMD, 테슬라, 알리바바, 로빈후드 등의 주식에 투자했다. 특히 비트코인 펀드 투자 규모는 1억2070만달러(약 1781억원)에 달하며 로빈후드에는 1억1680만달러(1723억원)가 투입됐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기관 퍼블릭 시티즌은 “명백한 이해충돌 사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러트닉은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정책 방향을 설계하는 실세로 여겨진다. 그의 공격적 협상 스타일, 동맹국을 향한 직설적 발언, 대중 강경노선은 앞으로 미국 통상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워싱턴 정가와 월가에서는 러트닉을 이렇게 부른다. 모두가 무리라고 지적했던 관세 정책도 마가 정신을 추진력 삼아 1년여를 지탱해온 그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그의 영향력은 트럼프 재집권 2년차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목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