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무력 행사 일삼던 중·러
유엔서 마두로 체포 강력 규탄
유엔서 마두로 체포 강력 규탄
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군사 작전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
5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벌인 군사 작전을 다루기 위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선 공수(攻守)가 뒤바뀐 모습이 연출됐다. 중국·러시아가 자유진영의 ‘전가의 보도’인 국제법 규범, 국가 주권, 대화와 외교 등을 앞세워 미국을 몰아붙였다.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 남중국해에서 불법적 영유권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의 입에서 “미국의 일방적·불법적 패권행위” “무력 침략 규탄” “무법시대” 같은 표현이 쏟아졌다.
반면 지난 80년 동안 자유·인권 같은 가치를 내세워 중·러를 압박해 온 미국은 수세적 입장에 섰다. 국제질서의 판이 바뀌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의 전통적 동맹인 유럽 국가들이 공동성명 등을 통해 미국의 주권국가 영토 침공, 그린란드 야욕에 대한 우려·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한목소리를 낼 때 대상은 러시아인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 화살이 동맹 미국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마이크 왈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마두로가 마약 밀매·자금 세탁 등의 혐의로 미 법원에 기소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체포·구금이 “잔혹한 외국 테러 조직의 수장에 대한 합법적인 기소를 집행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했다. 이어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 개표 논란을 거론하며 “그는 불법적인 대통령이었고, 수년 동안 (합법적인) 국가 원수가 아니었다”고 했다.
◇ 우크라 침공한 러시아가 “美의 무력 침략 규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압송 작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
이에 푸충(傅聰) 중국 대사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주권, 안보,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짓밟았다”며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패권 행위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이어 “어떤 국가도 세계 경찰로 행동할 수 없고, 국제 재판관을 자처할 수 없다”며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평화·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도 마두로 부부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모든 국제법적 규범을 위반한 미국의 무력 침략 행위를 단호히 규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 지도자에 대한 공격은 무법 시대로 되돌아가는 전조가 됐다”고 했다.
브라질·콜롬비아·쿠바·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스페인 등도 “국제 사회 전체에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됐다”며 미국 규탄 대열에 동참했다. 자유·민주 진영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는 “베네수엘라의 정권 이양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번 작전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상임 이사국이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무시하는 것은 국제 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힘과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해 온 미국이 이번에 힘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앞세우면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영유권 주장 불법 행위를 일삼고 있는 중국에 미국을 공격할 빌미를 준 셈이다. 러시아는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인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 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고, 중국은 자체 영해(領海) 개념인 ‘구단선’이 불법이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무시하며 대만해협에서 항행(航行) 및 상공 비행의 자유 등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동맹·우방국을 규합해 국제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데 상당한 외교력을 투사했는데, 정작 이들로부터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하라”는 소리를 듣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돈 베이컨 미 공화당 하원의원은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정당화하는 데 이번 미국의 조치(베네수엘라 공격)를 악용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적인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고, 중국이 대만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도 국제질서의 틀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가 마두로 축출에 이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자, 덴마크는 물론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미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을 공격한다면 나토의 종말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안보 질서도 붕괴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EU)은 “국가 주권, 영토 보전, 국경 불가침 원칙을 계속 수호할 것”이라 했고, 여러 회원국이 덴마크·그린란드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