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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삼성의 '숭산 프로젝트'와 현대차의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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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삼성의 '숭산 프로젝트'와 현대차의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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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일 상하이 루완구 마당로 306번지를 찾는다. 낡지만 단단한 붉은 벽돌집. 좁고 가파른 계단마다 김구 선생의 고뇌와 윤봉길 의사의 결기가 서려 있는 곳. 바로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다.

지금이야 상하이로 여행가는 한국인들에게 필수 참관코스로 남았다. 그래서 익숙하다. 다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새겨진 법통의 공간이 오늘날 온전한 모습으로 대통령을 맞이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크게 두 번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알고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서사다. 흔적도 없이 허물어져 사라질 뻔했던 역사의 현장을 지켜낸 불굴의 의지. 정부의 외교력이 미치지 못하던 그늘에서 기업보국(企業報國)을 실천한 두 기업의 사투.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다.


"이대로 두면 사라진다"… 수교 전 특명 떨어진 삼성의 '숭산 프로젝트'
시계바늘을 1990년으로 돌려보자.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말 그대로 폐가였다. 처참했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가 가장 오래 머물며 항일 투쟁을 지휘했던 곳이지만 광복 후 격동의 세월 속에 철저히 잊혀졌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살랐던 위대한 영혼들의 흔적은 무심한 시간의 궤적으로 흐릿하게 해체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던 날. 날이 좋거나 흐리거나 혹은 비가 왔던 날. 중국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상하이로 파견된 삼성물산 직원들은 묻고 물어 청사를 찾아낸 후 충격을 받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독립운동의 성지는 온데간데없고 중국인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허름한 쪽방촌으로 변해 있었다.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채 방치된 폐가. 그것이 우리 독립운동사 심장부의 현주소였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나던 중 갑자기 느껴버린 사명감일까. 중국에서의 원만한 비즈니스를 위한 철저한 준비의 과정에서 잡은 또하나의 감정일까. 보고를 받은 삼성물산 본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즉각 움직였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맺어지기도 전인 1990년 말 삼성은 청사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숭산(嵩山) 프로젝트'가 입안됐다. 숭산은 청사가 위치한 지역의 지명이었다.

과정은 험난했다. 우선 현실적인 문제. 수교 전이라 공식적인 외교 루트를 가동하기 어려웠다. 쉽게 말해 관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 뜻.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아직은 붉은색에 경기를 일으키던 사람들이 수두룩하던 시절, 중국도 반대의 의미로 낯설고 위협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상하이시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1991년 기어이 복원 합의서를 따냈다. 일본 반도체 공장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밤새 머리속에 각인한 설계도를 서로 짜맞추던 그 집요함에 북방 미지의 관료도 웃어버렸으리라. 가장 큰 난관이던 주민 이주 문제도 매끄러웠다. 삼성은 이주 비용 전액을 지원하며 그들을 설득해 내보냈다.

이제부터는 삼성의 시간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청사의 시간이다. 단순한 보수가 아니었다. 1920년대의 '공기'까지 되살리리라. 낡은 계단과 창틀을 뜯어내 닦고 조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1920년대 당시 사용하던 탁자, 의자, 침대를 구해와 회의실과 집무실을 채웠다.

김구 주석이 집무를 보던 책상, 요인들이 숙식을 해결하던 부엌까지 고증을 거쳐 완벽히 재현해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일을 했다. 아니, 해냈다. 그렇게 1993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마침내 복원된 청사 앞에 선 윤봉길 의사의 손자 윤주웅 씨는 삼성 측에 편지를 보냈다.

"할아버지가 비감한 마음으로 수시로 드나들었을 이곳이 되살아난 것을 보니 가슴 벅찬 설렘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불도저 앞의 임시정부… 정몽구 회장의 '쇼핑몰 저지' 담판
삼성이 폐가에서 건물을 일으켜 세웠다면 10여 년 뒤 밀려오는 개발의 불도저를 몸으로 막아선 것은 현대차그룹이었다.

2000년대 초반 상하이는 천지개벽 중이었다. 그리고 '2010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청사가 위치한 신톈디(新天地) 지역에 대규모 재개발 계획이 수립됐다. 모두가 풍요의 들판을 가로질러 광란의 축제를 벌이던 시기. 상하이시의 계획도에는 임시정부 청사 자리가 거대한 복합 쇼핑몰과 상업지구로 그려져 있었다.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낡은 벽돌집은 철거 1순위였다. 누군가를 탓할 일은 아니다. 이건 그냥 현실이다.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다급히 움직였다. "306롱(골목) 전체를 보존해 달라" 그러나 상하이시의 입장은 완강했다. "낙후된 지역이라 개발이 시급하다" 외교적 호소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시 위기가, 선선히 찾아왔다.

바로 그때 뚝심의 한 사내가 등판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 반드시 무언가를 해 내겠다는 듯.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다. 2004년 5월의 일이다. 정 명예회장은 한정 당시 상하이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임시정부 청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독립혼과 정통성이 살아 숨 쉬는 성지입니다.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감성에만 호소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구축한 신뢰와 경제적 파트너십을 지렛대로 삼았다. 마침 정 명예회장 특유의 선 굵은 경영과 중국의 간격이 극적으로 좁혀지던 중이었다. 현대차의 미래 투자 계획과 임시정부 보존을 연결한 승부수.

결과는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미 국제 입찰까지 진행되던 재개발 계획이 전면 수정됐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업 논리와 중국의 행정 시스템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신현택 당시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이 "국제 입찰 계획을 전면 보류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덕분에 주변이 화려한 카페와 명품 숍으로 변해가는 와중에도 임시정부 청사만큼은 그 자리에 섬처럼 남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청사를 지켜낸 데서 멈추지 않고 국가보훈부와 협약을 맺고 전 세계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과 유해 봉환 의전 차량 지원 등 보훈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뜻을 이은 삼성가(家) 역시 문화유산 보존에 막대한 사재를 출연하며 '문화보국'을 실천 중이다.


대통령의 길, 그리고 지켜짐의 힘
7일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100년 전 나라를 되찾으려던 선열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 흔적을 지키기 위해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며 헌신했던 후대 기업인들의 '보이지 않는 애국'이 겹겹이 쌓인 살아있는 역사다. 질곡의 공간이자 슬픔의 땅, 의지의 현신이다.

그렇게 화려한 신톈디 거리 한복판,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작은 붉은 벽돌집은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에게만 미래가 있듯 역사를 지키는 기업이 있기에 국가의 품격도 지켜질 수 있다고. 9년 만의 방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걸음 하나하나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시간의 흔적이다. 역사다. 공간이다. 나아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익숙하고 뻔한,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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