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우면 안 된다” 다짐 적어
한 기업인이 보낸 신년 탁상 달력
진흙탕에 뒹구는 국내 정치로
고개 숙이는 일 올해는 없기를
한 기업인이 보낸 신년 탁상 달력
진흙탕에 뒹구는 국내 정치로
고개 숙이는 일 올해는 없기를
한일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알게 된 기업인 S씨가 탁상 달력을 보내왔다. 신년 인사 겸 회사 홍보차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달력의 첫 장에 뜻밖의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회사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 같은 제목의 편지도 동봉돼 있었다.
S씨는 달력에 이 문구를 써 놓은 이유로 최근 시세로 1조원이 넘는다는 주일 한국 대사관 부지를 기증한 재일 교포 서갑호 회장을 거론했다. 주일 대사관 1층의 서 회장을 기리는 공간에서 그가 남긴 말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를 보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S씨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시절, 특히 힘들고 어려웠던 재일 교포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우려고 도쿄 중심부의 토지와 건물을 내어준 서 회장의 마음이 서려 있는 글귀”라고 했다.
그는 서 회장의 마음을 담아 ‘회사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를 새해 슬로건으로 정했다고 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부끄럽지 않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해서 맹렬히 전진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썼다.
S씨는 달력에 이 문구를 써 놓은 이유로 최근 시세로 1조원이 넘는다는 주일 한국 대사관 부지를 기증한 재일 교포 서갑호 회장을 거론했다. 주일 대사관 1층의 서 회장을 기리는 공간에서 그가 남긴 말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를 보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S씨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시절, 특히 힘들고 어려웠던 재일 교포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우려고 도쿄 중심부의 토지와 건물을 내어준 서 회장의 마음이 서려 있는 글귀”라고 했다.
그는 서 회장의 마음을 담아 ‘회사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를 새해 슬로건으로 정했다고 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부끄럽지 않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해서 맹렬히 전진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썼다.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서 회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새해 좌표로 삼은 것이 잔잔한 울림을 줬다.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가 올해 정치권의 슬로건이 되면 좋겠다고.
30년 넘게 일한 신문사에서의 경력과 현재 직책 때문에 국내외에서 외국인들을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아산 플래넘, 한일포럼, 제주포럼 등에서 해외 인사들을 접하곤 했다. 이때마다 2024년 12·3 계엄 이후 한국 사정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국내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지난해 12월 방한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무엇보다 매일 밤 폭탄주를 수십 잔씩 마신다는 소문이 돌던 대통령이 병정놀이하듯 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반사 이익으로 정권을 잡은 집권 세력이 국회와 특검을 손안의 공깃돌처럼 다루며 연성(軟性) 독재의 징후를 숨기지 않는 것 역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런 부끄러움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본지와 인터뷰한 가수 최백호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지요. 싸워대느라 난장판이에요. 이 사람들, 좌우를 떠나 정말 부끄러워요.” 단가(短歌) 시인 손호연씨의 딸 방송인 이승신씨는 새해 인사를 주고받을 때 “나라(가) 제발~ 밖(에) 나가면 부끄럼”이라고 했다. 신문사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 기자는 ‘언론 악법’을 밀어붙이는 권력을 향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자랑스러운 성취는 모두 비(非)정치적 영역에서 나왔다. K컬처를 비롯, 한국과 관련된 것은 모두 비상하고 있는데, 유독 K폴리틱스(정치)는 진흙탕을 뒹굴고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은 지난해 수출 7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우리보다 먼저 연간 수출액 7000억달러를 넘은 국가는 미국·독일·중국·일본·네덜란드 등 5개국에 불과한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정치를 보면 환멸을 느낄 정도다. 한국에선 정치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자랑스러워지는 ‘원심력 패러독스’가 작용하는 것일까.
해마다 연초가 되면 어떤 탁상 달력을 책상에 올려 놓을지 고민하곤 했다. 올해는 예외다. S씨가 보내준 달력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놓았다. 자주 바라보며 나 자신부터 부끄럽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국내 정치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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