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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피해자 ‘부고’ 전할 이도 못찾았는데…조선인 차별, 배외주의로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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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피해자 ‘부고’ 전할 이도 못찾았는데…조선인 차별, 배외주의로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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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일본 미에현 구마노시 기노모토초 ‘이기윤·배상도씨 추모비’ 앞에서 배씨 유족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미에현 구마노시 기노모토초 ‘이기윤·배상도씨 추모비’ 앞에서 배씨 유족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100년 전 이곳에서 저희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 왜 그렇게 죽였어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난 3일 일본 미에현 구마노시 기노모토초 ‘이기윤·배상도씨 추모비’ 앞에서 배철용씨는 무거운 표정으로 슬픔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너무 긴 세월이 지나버린 일이고 이제 어쩔 수 없는 과거라고 할지 모르지만, 일본 쪽이 피해자들에게 뼈아프게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절절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의 할아버지 배상도씨는 일제강점기이던 1926년 기노모토초에 산을 뚫어 신작로를 내는 터널 공사장의 노동자로 식민지 조선에서 건너왔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26년 1월3일, 그는 동료 조선인 이기윤씨와 함께 일본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다. 마을 영화관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발단이 돼 일본인이 조선인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튿날 조선인 노동자 여럿이 이 문제를 따지자, 일본인들이 무리 지어 조선인 합숙소를 습격했고 이기윤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일본인 재향군인과 소방대, 소년단 등은 군사교육용 총검과 엽총, 일본도, 소방용 쇠갈고리와 죽창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다. 조선인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인근 산으로 피신하며 공사용 다이너마이트 등을 던지며 맞섰다. 이때 함께 공사장에서 일하던 일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조선인 노동자 배상도씨가 길에서 참혹하게 숨졌다. 25살, 29살에 불과했던 청년들이었다. 당시 자료에는 “배씨가 쇠갈고리에 찔려 숨진 채 사흘 동안 길거리에 버려져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 쪽 자경단 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산이나 터널로 피신했던 조선인들을 모두 추적해 붙잡은 뒤 결국 이들을 동네에서 모두 추방했다.



희생된 조선인들에 대한 잔혹한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희생된 이씨와 배씨를 고용했던 일본인이 인근 한 절에 무연고 묘지를 썼다. 하지만 이들의 묘비에는 네 글자로 된 불교식 이름이 적혔는데, 기노모토회는 “대개 일본인의 계명은 여섯 글자이고 네 글자의 계명은 사람에게는 쓰지 않던 것으로 당시 조선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온 재일동포 역사연구자 김정미와 일본인 사토 쇼진 주도로 1989년 ‘미에현 기노모토에서 학살된 조선인 노동자의 추도비를 건립하는 회’(기노모토회)가 만들어졌다. 5년 뒤 뜻있는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기노모토터널 남쪽 입구 근처에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추도비가 세워졌다. 그나마 기노모토회의 노력으로 배씨 유족과는 연락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기윤씨는 100년이 지나도록 부고를 전할 이들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사토는 이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비극적 역사는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경험한 것이냐”고 돌이켜봤다. 이날도 추도비 옆 안내문에는 “이기윤씨와 배상도씨가 조선의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일본에 일하러 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타향에서 학살당한 것도 천황제 아래 진행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그것에서 일어난 조선인 차별이 원인이었다”는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잔인한 역사로부터 100년이 흐른 이날 기노모토회는 유가족들과 함께 추모 자리를 마련하고 “1926년 1월3일 이기윤씨와 배상도씨가 학살됐던 현장에 우리도 서보려고 한다. 그 죽음의 의미를 10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도 추도식이 열린 추모비 바로 옆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산을 파내 만든 길이 600여미터짜리 100년 된 낡은 터널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바탕이 된 잔혹한 학살 사건에 대해 10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주목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 배외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기노모토회는 이씨와 배씨에 대한 학살이 1926년 어느 시골에서 돌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부터 3년 전에 일어났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1923년)로부터 현재 일본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 문제를 드러내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한다고 본다.



실제 기노모토 사건에 앞선 1923년 9월1일, 일본 수도권 일대 대지진 혼란 속에 조선인 6천여명 등이 희생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일본인 집을 불태운다” 같은 헛소문을 빌미로 계엄령 아래서 군과 경찰, 자경단이 죄 없는 조선인 등을 학살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건너온 이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며, 생명조차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로 대하면서 빚어진 비극이다.






기노모토 사건은 간토대학살 3년 뒤 간토(혼슈 동부 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지방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지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발단이 됐고, 참사 당시 “조선인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복수하러 온다”, “마을에 불을 지르려 한다”는 거짓 소문이 퍼졌다는 점 등 구조가 같다. 간토 지역과 기노모토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누구도 사죄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1932년 이와테현 오후나토선 철도 공사장에서 정당한 처우를 요구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을 일본인들이 습격해 학살한 이른바 ‘야하기’ 사건으로 참상이 거듭됐다. 김정미씨는 “기노모토 학살 사건만 봐도, 지금까지 일본 정부나 지역의 책임 있는 이들 누구도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나 배상을 한 적이 없다”며 “더 큰 문제는 2026년인 지금, 1926년과 다름없이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또 다른 ‘이기윤씨와 배상도씨’,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차별의 역사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우익 성향 참정당이 “외국인이 마구잡이로 국내에 들어와 일본인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거나 한국인을 멸시하는 ‘존’(チョン)이라는 용어를 쓰며 노골적 차별을 조장했고, 평범한 유권자들이 이런 태도에 호응하면서 무려 국회 의석 15석을 챙겼다. 게다가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들까지 유권자 ‘표심’을 얻으려고 이런 분위기를 더 강화하고 있다.



특히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하면서 일본 정부마저 ‘배외주의’ 성향 정책에 적극적인 태도다. 실제 지난해 11월4일 다카이치 총리는 ‘외국인과 질서 있는 공생사회 실현을 위한 관계 각료회의’에서 불법 체류자 제로(0) 계획과 외국인 체류 자격 심사의 엄정한 운용, 귀화 요건 강화 등을 ‘총리 지시사항’으로 내놨다. 또 외국인에 대한 국민건강보험료와 의료비 관련 제도를 재점검하고, 아동수당과 취학비용 지원 문제도 다시 살피라고 했다. 관련 정책의 적정성을 살피라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일본 체류 외국인들을 이전보다 까다롭게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배외주의와는 선을 긋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부 외국인의 불법 행위나 일탈에 일본 국민들이 불안과 불공정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국가공안위원회를 비롯해 법무성,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국토교통성, 방위성, 외무성 등 사실상 전 부처 차원의 외국인 관리 대책 강화를 본격화하라고 지시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숨겨진 손톱자국: 간토대학살’(1983),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2017)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온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은 한겨레에 “100년 전 기노모토 사건과 같은 참담한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와 사회가 외국인과 공생, 다른 문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며 “ 또 다른 100년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지난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때”라고 짚었다.



일본 미에현 구마노시 기노모토초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파낸 기노모토터널의 모습.

일본 미에현 구마노시 기노모토초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파낸 기노모토터널의 모습.




‘미에현 기노모토에서 학살된 조선인 노동자의 추도비를 건립하는 회’가 1994년 세운 ‘이기윤·배상도씨 추모비’ 앞에 이들의 희생 100년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미에현 기노모토에서 학살된 조선인 노동자의 추도비를 건립하는 회’가 1994년 세운 ‘이기윤·배상도씨 추모비’ 앞에 이들의 희생 100년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기노모토(미에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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