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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 10개월 “돌아갈 곳은 8평 컨테이너” “돌아갈 수 없는 평생 일터”

조선일보 안동=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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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 10개월 “돌아갈 곳은 8평 컨테이너” “돌아갈 수 없는 평생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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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3900명은 지금…
안동 산불피해 이재민

안동 산불피해 이재민


지난달 3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마을회관 앞 공터에 철제 컨테이너(조립식 주택) 17동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작년 3월 경북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 20여 명이 사는 곳이다.

당시 7일간 이어진 산불로 안동, 의성, 영덕 등 주민 5499명(3323가구)이 이재민이 됐다. 그 중 약 70%인 3893명(2280가구)이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런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불이 난지 10달째이지만 동네 뒷산은 여전히 새카만 나무 천지다. 불탄 집들은 터만 남아 있다.

“왔니껴.”

정태홍(80)씨가 사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27㎡(약 8평) 공간에 초코파이와 캔커피 등 구호품이 잔뜩 쌓여 있었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다. 정씨는 여기서 아내(72)와 함께 산다.

그는 요즘도 가끔 악몽을 꾼다고 했다. “불덩이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어요. 검은 연기가 자욱해 아무것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대지 500㎡(약 150평)인 그의 집은 완전히 불탔다.

2주간 의성국민체육센터 구호 텐트에 살다 한 달간 의성읍에 있는 모텔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작년 5월부터 여기에 살고 있다. 정씨는 “설에 아이들이 온다는데 재울 곳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작년 3월 22일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28일까지 7일간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5개 시·군을 덮쳤다.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산불이었다. 서울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10만㏊ 산림이 불탔다. 27명이 숨지고 주택 3819채가 전소했다. 경북도 추산 피해액은 1조원을 넘었다. 경북도는 산불 이전 상태로 복구하려면 1조8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경북도와 5개 시·군은 작년 5월 1318억원을 들여 시유지 등에 이재민들이 머물 컨테이너 2623동을 지었다. 1동당 5000만원꼴이다. 이재민이 신청하면 무료로 거주할 수 있다. 전기료는 한국전력공사와 경북도가 매달 30만원씩 지원한다.

컨테이너마다 에어컨과 전기 온돌이 설치돼 있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안동 길안면 남촌마을 컨테이너에서 만난 남모(90)씨는 “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히게 덥고, 겨울에는 한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이불을 싸매고 있어야 한다”며 “그래도 여기라도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복구는 더딘 상황이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작년 5월부터 1136억원을 들여 불탄 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진도가 44% 수준이다.

불탄 집은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지자체 지원금, 성금 등을 모아 각자 복구해야 하는데 감당이 안 된다고 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집이 완전히 불타도 지원금, 성금 합쳐 1억2000만원 정도”라며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평당 건축비도 800만~1000만원이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원금을 이미 써버린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남씨는 “지원금 절반을 대추나무 등 묘목을 사는 데 써버려 집 지을 엄두가 안 난다”며 “주변엔 도시에 사는 자녀들에게 지원금을 준 사례도 제법 많다”고 했다.

컨테이너에 살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년. 행정안전부 운영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재민들은 그 이후가 걱정이다.


이모(83)씨는 “지금이야 이렇게 살지만 2년 뒤엔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며 “자식들에게 부담 지우기도 싫다”고 했다.

경북도도 고민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세금을 들여 이재민들의 집을 대신 지어줄 수도 없고 이재민들이 싼값에 컨테이너를 매입해 계속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성, 청송, 영양 등은 안 그래도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데 ‘지역 소멸’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피해 복구뿐 아니라 지역 소멸의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2022년 울진 산불 때도 지원금을 받아 불탄 집을 복구한 사람이 절반도 안 됐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산불 피해를 본 지역에 마을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임대하는 방법 등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안동=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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