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한 점] [2]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과수원’(1888). 캔버스에 유화, 72.4×53.3㎝.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방스의 봄 공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썼다. 고흐는 대범한 색채와 힘찬 붓질로 봄기운을 불어 넣으려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
빈센트 반 고흐는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Arles)에서 화가로 급성장한다. 1888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5개월간 머물면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같은 명작을 이 시기에 완성했다. 고흐가 화가들의 낙원을 꿈꾸며 고갱과 함께 예술 공동체를 짧게나마 실험한 곳도 아를이었다. 오늘날 ‘고흐’ 하면 떠오르는 전설 같은 그림과 일화가 바로 아를을 무대로 펼쳐진 셈이다. 프로방스의 뜨거운 햇살 아래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해 파리를 떠나 아를로 향했던 고흐의 선택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고흐가 처음 도착한 날 아를은 기록적인 폭설과 함께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와는 판이한 모습에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고흐는 도리어 흰 눈 사이로 언뜻 보이는 꽃망울과 붉은빛이 도는 대지에 환호한다. 추위에 굴하지 않고 생명이 움트는 자연의 섭리에 더 감동하며, 그는 아를에서 보낸 첫 두 달간 봄꽃 나무 그림에 매진한다. 이렇게 해서 그가 그린 봄꽃 나무 시리즈는 총 14점이나 된다. 이 중 한 점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바로 ‘꽃 피는 과수원’이 그것이다.
화면 오른쪽에 한 그루의 나무가 클로즈업되어 있고 양쪽 뒤로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화면은 지평선으로 양분되는데 대각선으로 불규칙하게 가로지르는 검붉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꽃과 함께 새싹도 움트고 있고, 대지는 이미 초록으로 물들어 봄기운이 충만하다.
고흐가 1888년 4월 9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검은 가지가 무성한 연노랑 꽃의 자두나무를 그리고 있다고 쓴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화면 속 나무는 자두나무로 보인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의 그림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물감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며 테오에게 미안해했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두터운 물감층이 인상적이다. 특히 하얀 꽃잎과 대지의 푸른 새싹들은 튜브에서 갓 짜낸 물감 그대로인 듯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인상파 특유의 분절된 붓 터치 속에서 색채도 대범하다. 제작 당시에는 하늘이 더 분홍색조를 띠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실제라면 그림 하단의 초록색 대지,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가지와 함께 강한 대비를 이루었을 것이다.
고흐가 아를에서 거둔 회화적 업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려라”일 것이다. 나뭇가지가 때론 검게, 때론 파랗게 변해가는 모습은 자연의 색이 고흐의 심리로 재해색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1888). 지난 2022년 경매에서 1억1720만달러(당시 한화 1607억원)에 거래되어 고흐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크리스티 |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첫 연작 봄꽃 나무 시리즈는 시기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그의 전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시리즈에 대한 시장 평가도 높아가고 있다. 고흐의 그림 중 최고가는 2022년 크리스티에서 경매된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으로, 지금 전시된 작품과 쌍둥이 같은 그림이다. 거래가는 1억1720만달러, 당시 한화 1607억원을 기록했다.
동생에게 물감을 구걸하며 힘들게 그린 그림이 이처럼 경이로운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한국을 방문한 고흐의 봄꽃 나무 그림도 아를에서 만개하는 그의 예술 세계의 발화점으로 새삼 다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
▲전시명: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장소: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간: 2026년 3월 15일까지
▲주최: 조선일보사·국립중앙박물관·메트로폴리탄박물관
▲문의: 1644-7169
▲입장료: 성인 1만9000원
※카카오톡 앱에서 신년 관람(1월 31일까지) 20% 할인 판매 중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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