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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페르소나'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

서울경제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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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페르소나'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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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방중, 생각보다 더 많은 진전…대립 사안 해소 길 찾아"
혈액암 투병 중 5일 별세···향년 74세
1957년 5세에 '황혼 열차' 아역 데뷔
69년 동안 170여 편이 넘는 작품 출연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배우로 각인
1980~90년대 한국 영화의 아이콘 우뚝
연기력·스타성 겸비 모든 감독의 '캐스팅 0순위'
2003년 '실미도'로 천만 영화 시대 열어
배우 사명감, 높은 도덕성으로 국민적 신뢰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께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해온 안성기는 최근 회복에 전념하며 작품 복귀를 준비해왔다. 그는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1952년 1월 1일 출생한 안성기는 1957년 5살의 나이에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래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로 한국 영화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특정 이미지에 국한하지 않고 천진난만한 어린이부터 방황하는 청춘, 삶의 의미를 잃은 청년, 시골에서 올라온 고된 노동자, 드라마틱한 삶을 산 역사적 인물, 충직한 군인, 왕년의 톱스타와의 의리를 지키는 매니저, 비리 경찰 등 당대 우리의 모습이 그의 연기를 통해 재현됐다. 관객들은 그의 연기에 웃고 울고 때로는 각성하며 고단한 삶을 헤쳐나갈 힘을 얻었다. 이에 대중은 그에게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아역 배우에서 시작한 그는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성인 배우로 자리매김하며 1980~90년대 한국 영화의 아이콘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흥행 보증 수표’로 모든 감독들의 ‘캐스팅 0 순위' 배우였다.





1980년대 명작과 흥행작의 중심에는 안성기가 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다라'(1981), '안개마을'·'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그해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5), '성공시대'·'칠수와만수'(1988) 등에 출연했다.

1980년대에 리얼리즘적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시대물, 코믹, 멜로, 오컬트,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며 또 다른 최고의 전성기에 올랐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과 '하얀전쟁'(1992), 한국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꼽히는 '투캅스'(1993), 멜로 '그대 안의 블루'(1992), '태백산맥'(1994), '퇴마록'(1998),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출연 작품마다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실미도’로 천만 영화 시대를 여는 등 한국 영화계의 버팀목이 됐다. 그는 액션 연기로 첫 남우조연상을 받은 '무사'(2001), '실미도'(2003), 박중훈과 또 한 번 콤비로 출연한 '라디오스타'(2006) 등에 꾸준히 출연했다.









2010∼2020년대에는 과거보다 배역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촬영 현장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석궁 테러' 실화를 다룬 '부러진 화살'(2012), 한 남성의 연모 속에 인생과 사랑·죽음을 표현한 '화장'(2015)은 ‘거장 배우’로서 그의 연륜과 내공이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맡았다.

안성기는 아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9년간 170편 넘게 출연하며 한국 3대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이자 40여 차례 수상으로 ‘최다 수상’ 배우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라는 기록도 세웠다. '기쁜 우리 젊은날'(1987)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차례 수상했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그는 또 영화배우라는 사명감을 몸소 실천하고자 끊임없이 자신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진정한 공인’이기도 했다. 69년을 활동하면서 배우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한편 40년 동안 유니세프와 함께 하며 ‘선한 영향력’을 몸소 실천했다. ‘국민 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진짜 저는 국민 배우인 것 같다"며 “팬클럽도 없고 길을 지나다 따뜻하게 목례로 인사 나누는 시민, 이웃 같은 배우”라고 말하는 등 겸양의 자세를 보였다. 이에 국민들은 그에게 오랜 신뢰와 믿음으로 응답했다. 그는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1983년부터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맥심의 최장수 모델로도 활동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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