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허위조작근절을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처리되고 있다. /연합뉴스 |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 정보 근절법)과 관련해 “미국 측과 의견 교환이 있었지만, 미 입장에서 충분치 못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고 밝혔다. 법 통과 이전부터 미국 측 우려가 있었는데, 제대로 해소 못 했다는 얘기다. ‘가짜 뉴스’ 근절을 내세워 밀어붙인 법안이 언론 자유 침해 논란을 넘어 한미 간 통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항의는 국회 통과 직후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다. 미 국무부가 31일 “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약화하는 개정안을 승인한 데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한다”고 한데 이어 지난 1일 예정됐던 ‘한미 FTA 공동위원회’의 비공개회의는 돌연 취소됐다.
미국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구글·메타 등 자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 법에 따른 규제를 받게 된 데 대한 반발 성격도 있다. 이번 개정안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허위조작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즉각 삭제해야 하는 책임까지 대폭 강화했다. 정부가 직접 검열하기엔 법적 부담이 크니,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기업들에게 논란 소지가 있는 콘텐츠를 먼저 지우도록 유도한 것이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알고리즘 운영을 강요받는 셈이며, 이에 대해 비관세 장벽이라 반발하는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 도입 당시 미국이 보여준 강력한 반발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우방과의 통상 마찰까지 불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허위조작정보’의 정의는 모호하다. ‘악의적’이라는 완전히 주관적 잣대로 정보의 삭제를 강제하고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은 언론 자유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와 참여연대 등은 “이 법은 국가에 의한 검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규탄하고 있다. 여권이 말하는 ‘가짜 뉴스’의 상당 부분은 김어준 등 친여 인터넷 매체에서 나오고 있는데, 여권은 정작 이들에 대해선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법안은 나라 안에서는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밖에선 미국과 통상 갈등에 휘말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제라도 현실을 바로 보고, 독소 조항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가짜 뉴스 대응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가짜 뉴스를 처벌할 수 있는 민사·형사적 법률이 있다. 그런데도 가짜 뉴스를 양산해 온 친여 매체들이 아니라 비판 언론을 겨냥한 법을 또 만든다고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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