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인터뷰 ①
희망나눔상 다품 공동체 배영근 씨
희망나눔상 다품 공동체 배영근 씨
배영근 씨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다품 공동체’ 앞에 서 있다. 이곳은 그가 14년간 새벽마다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며 관계를 쌓아온 활동의 거점이다. |
열리지 않던 문이 있었다. 경찰도, 소방도, 공무원도 끝내 닿지 못한 그 문. 안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새벽마다 도시락을 들고 그 골목을 걸었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봐… 나 도시락이야. 문 좀 열어봐.”
짧은 침묵 뒤,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철컥.’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강한 설득도, 법적 권한도, 큰 목소리도 아니었다. 2012년부터 같은 시간에 같은 목소리로 쌓여 온 ‘관계의 기억’이 문을 열었다.
이것은 서울 종로·혜화의 새벽을 14년째 지켜온 배영근 씨(73)의 이야기다.
● 도시락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아침 5시. 도시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작은 조리 공간에서는 김이 먼저 오른다. 그의 도시락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이거 안 하면… 제 인생이 비어요.”
반찬은 소박하다. 그러나 도시락이 놓이는 순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방 안에는 음식보다 먼저 사람의 온기가 들어간다.
“도시락은 핑계예요. 제가 묻고 싶은 건 안부예요.”
어떤 어르신은 편지를 써 주었고, 어떤 어르신은 그의 손을 잡고 병원에 함께 갔다.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분은 그의 방문 덕에 돌봄 체계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그는 어르신들의 하루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작은 기둥 같은 존재였다.
● 시작은 소명보다 훨씬 작은 ‘믹스커피 몇 봉지’
평생 의류업에 몸담아온 그는 아들의 서울대 입학을 계기로 동숭동으로 이사했다. 낙산을 오르내리며 마주한 동네의 풍경은 예상보다 거칠고 건조했다. 햇볕이 좀처럼 들지 않는 방, 낮에도 불이 켜진 집들, 길가 벤치에 앉아 하루를 버티는 노인들. 겨울이 오면 그 풍경은 더 적막해졌다. 사람은 많은데, 말은 적었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집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어느 날 집에 있던 믹스커피 몇 봉지를 손에 쥐고, 가장 가까운 문부터 두드렸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103세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커피를 받자마자 말없이 작은 조끼 하나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줬다. 오래전 손으로 뜬 듯한, 크지도 않은 조끼였다.
“그때 받은 마음이… 아직도 제 등을 밀어요.”
도움을 주러 간 자리에서 오히려 마음을 건네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그 문 앞으로 불러냈다. 그렇게 그의 하루는, 그리고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배영근 씨(오른쪽)가 2025년 12월 12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시상식에서 희망나눔상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경 GKL사회공헌재단 이사장, 박유미 씨. |
● 공식 복지가 닿지 못한 틈을 메우는 사람
그의 새벽은 동숭동에서 시작해 혜화와 종로로 이어진다. 고시원과 쪽방촌, 반지하, 다문화 한부모 가정까지. 14년 동안 그가 두드린 문은 약 300곳에 이른다. 주소로는 찾기 어렵고, 행정 서류로는 포착되지 않는 공간들이다.
보증금이 없어 집을 구하지 못한 중장년, 신원 확인이 어려워 제도 밖에 머무는 가정, 좁은 고시원 방에서 끼니를 건너뛰는 청년들. 그는 그 사이를 걸으며 하나하나 확인한다. 오늘은 밥을 먹었는지, 몸은 아프지 않은지, 누군가와 말을 나눴는지.
“지역 안에서 굶거나, 완전히 고립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철학도, 대의명분도 아니다. 이 단순한 문장이 그의 발걸음을 움직여왔다.
도시락은 그의 활동의 일부일 뿐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빨래를 대신 수거해 세탁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대학생 멘토를 연결한다. 병원에서 응급 연락이 오면 가족 대신 가장 먼저 달려가고, 출소 후 갈 곳 없는 이웃에게는 잠시 머물 곳을 알아본다. 신분이 불확실해 제도에 연결되지 못한 이웃을 확인하고, 위기 상황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받는 번호도 그의 이름이다.
그는 스스로를 활동가라 부르지 않는다. 다만 지역의 시간과 시간 사이, 제도와 제도 사이를 잇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끊어지면 안 되는 실처럼.
● 문을 연 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극단적 선택 직전, 문이 열렸던 그날.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실을 보았다. 문을 연 것은 설득이나 명령이 아니었다. 그 집 문 앞에 수천 번 놓였던 도시락, 수천 번의 노크, 수천 번의 “괜찮으셨어요?”였다.
배영근 씨는 말한다.
“그분에게 저는… 그냥 익숙한 사람이었겠죠.”
휴가도, 수당도, 명예도 없이 쌓아온 14년.
그가 해온 것은 수천 번의 식사가 아니라 수천 번의 ‘존재 확인’이었다.
“이 시간을 걷어내면… 제 인생에서 뭐가 남을까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다품 공동체 앞에서 배영근 씨(오른쪽)와 ‘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관계자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영근 씨는 이 공간을 중심으로 14년째 지역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는 새벽 돌봄 활동을 이어왔다. |
● 지역의 결을 잇는 사람에게, 마침내 돌아온 작은 빛
그의 활동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그를 본받아 다른 지역에서 도시락·세탁·멘토링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올해, 그의 새벽은 공식적으로 기록됐다. 2025년 ‘이웃사랑실천상·GKL 사회공헌상’(주최: 그랜드코리아레저, GKL사회공헌재단) 희망나눔상 수상. 배영근 씨는 힘주어 말했다.
“고단한 순간이 있어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의 수상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14년의 새벽과 문 앞에 놓인 모든 마음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도시의 가장 어두운 새벽을 밝혀온 사람에게, 마침내 작은 빛 하나가 돌아갔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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