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자극적 ‘여론 재판’·음모론 극성
대중들 현혹… 피해자 고통은 누가 책임지나
대중들 현혹… 피해자 고통은 누가 책임지나
“사람들이 언니의 말을 믿지 않았던 건 언니의 진실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자백의 대가’에서 모은(김고은)이 남편 살해 혐의로 수감된 안윤수(전도연)에게 건넨 대사다. 윤수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사도, 언론도, 그 누구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용의자가 조사 중에 커피를 찾고, 화려한 옷을 입고, 웃음을 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어떤 것도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었지만, ‘젊은 내연녀를 둔 남편을 질투한 연상 아내’라는 가설은 진실 여부를 떠나 대중에게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윤수는 법정에 서기 전 이미 여론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확성기다. 올해 5월, 전호준이라는 뮤지컬 배우 이야기가 포털 뉴스를 장식했다. 피 묻은 얼굴 사진과 ‘여자친구를 폭행한 배우’라는 제목은 대중의 분노를 불렀다. 상대 여성은 그가 목을 조르고 유산까지 시켰다고 인스타그램에 폭로했다. 무명에 가깝던 배우는 하룻밤 새 ‘데이트 폭력범’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자백의 대가’에서 모은(김고은)이 남편 살해 혐의로 수감된 안윤수(전도연)에게 건넨 대사다. 윤수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사도, 언론도, 그 누구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용의자가 조사 중에 커피를 찾고, 화려한 옷을 입고, 웃음을 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어떤 것도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었지만, ‘젊은 내연녀를 둔 남편을 질투한 연상 아내’라는 가설은 진실 여부를 떠나 대중에게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윤수는 법정에 서기 전 이미 여론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
지난주 전씨의 이야기가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이번 헤드라인은 ‘불기소처분’. 검찰 수사 결과 전씨는 때린 게 아니라 맞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여성이 허위사실 유포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전씨는 지난 7개월간 ‘데이트 폭력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은둔해야 했고 좋아하는 무대에서도 떠나 있어야 했다. 법적 무죄는 증명됐지만, 무너진 일상은 누가 보상해 줄까.
소셜미디어가 열어젖힌 여론재판의 법정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곤 한다. 2021년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강공원에서 실종된 의대생의 친구가 네티즌에게 살인범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으나 경찰 수사 결과 ‘단순 실족사’로 종결된 사건이다. 하지만 대중은 수사 과정 내내 친구를 살인자로 지목했다. ‘술 마시다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라는 팩트는 너무 밋밋해서, ‘친구의 배신과 살인’이라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이길 수 없었다. 2017년 ‘240번 버스 사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자극적으로 각색되어 올라온 글이 버스 기사를 ‘아이와 엄마를 생이별시킨 악마’로 둔갑시켰다. CCTV 공개 후 기사는 누명을 벗었지만, 그와 가족이 겪은 고통은 지워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의 흐름이다. 밋밋한 진실보다 자극적인 거짓이 주목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2020년대 들어 뚜렷하게 나빠진 경향이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 언론은 과열 보도를 자성하는 시늉이라도 했고, 악플러들은 쥐구멍이라도 찾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론재판에는 이런 부끄러움이 없다. 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진실이 밝혀져도 소셜미디어의 ‘사이버 레커’들은 반성은커녕 “경찰이 매수됐다”, “권력자가 덮었다”는 식의 더 자극적인 음모론을 재생산한다.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조회 수가 떨어지고 수익 모델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이 신문과 방송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점점 더 많은 여론재판의 소재가 더 쉽게 소비된다. 우리 자신이 여론재판에 오를 가능성도 점점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마트폰 위에서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며 이런 새로운 플랫폼이 제공하는 흥미진진한 거짓에 열광한다. 이 잔혹한 서커스 무대에서 피를 흘리는 건 우리 같은 평범한 이웃들이고, 입장료를 챙겨 배를 불리는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사이버 레커뿐이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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