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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줄 ‘핵잠용 원자로’ 실은 러시아 유령선, 지중해에서 격침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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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줄 ‘핵잠용 원자로’ 실은 러시아 유령선, 지중해에서 격침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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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흑해 연안의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유조선이 정박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노보로시스크/AP 연합뉴스

러시아 흑해 연안의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유조선이 정박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노보로시스크/AP 연합뉴스


1년여 전 지중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화물선이 북한에 보낼 원자로 2기를 싣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스페인 당국의 조사결과가 공개됐다. 서방에서는 북한이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핵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제공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31일(현지시각) 프랑스 르피가로는 스페인 일간 라베르다드를 인용해, 스페인 정부가 지난해 12월 23일 지중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선박 우르사 마요르(Ursa Major)호를 조사해 최근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조사에 따르면 길이 142m 크기인 이 배는 지난해 12월11일 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해 올해 1월22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난 지난해 12월21일부터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쫓아오는 무언가를 따돌리려는 듯 갑자기 속도를 줄이거나 항로를 변침하는 등 불규칙한 항해를 한 것이다. 이튿날엔 이유 없이 속도를 줄이더니 좌현으로 기울었다. 스페인 해사 당국이 배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든 게 괜찮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12월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밤 스페인·알제리 사이 해역에서 배는 침몰했다. 승조원 16명 중 2명이 실종되고 14명은 스페인으로 이송됐다. 선사는 러시아 국영 언론들에 성명을 내어 “우르사 마요르호를 겨냥한 테러 공격이 자행됐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했지만, 누가 왜 공격을 벌였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배가 공식적으로 신고한 화물은 항만용 크레인과 쇄빙선용 덮개, 빈 컨테이너 등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당국은 배의 선미에 무게 65t 미신고 상자들이 실렸고, 여기엔 냉각용 배관과 원자로의 핵심 부품들이 들어 있었음을 확인했다. 당국은 이를 근거로 VM-4SG 원자로 2기가 배에 실려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원자로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까운 북한의 나선으로 향할 예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당국은 추정했다. 배에 실린 크레인은 나선항에 원자로를 하역하는 용도였다. 다만 배에 폭발이 있었음에도 인근 바다에 방사능 오염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핵연료는 실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정부는 선체에 난 직경 500mm 크기 구멍에도 주목했다. 구멍 가장자리가 배 안쪽으로 말려있어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였다. 스페인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손상은 일반적인 폭약보다는 초공동 특수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봤다. 폭약 없이도 선박을 관통하는 이 무기는 일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중국·러시아 등만 보유 중이다.



르피가로는 라베르다드를 인용해 “스페인 당국은 서방 잠수함이 개입해 북한으로 가려던 원자로 2기의 비밀 운송을 차단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러시아의 반응 역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당시 러시아 군함 이반 그렌이 사고 해역에 나타나 스페인 구조팀에 ‘구조 작전 통제권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며칠 뒤엔 러시아 해양조사선이 해역에 와 해저를 뒤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우르사 마요르와 선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5월 미 국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러시아는 국제사회 감시를 피해 원유·무기 등을 나르는 유령선박 수백척을 운용 중인데, 이 배도 그중 하나라는 얘기다.



한편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대가로 핵잠수함 등에 쓰일 원자로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북한은 우르사 마요르가 침몰하기 2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해 1만1000여명의 병력을 파병한 상태였다. 당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북한의 파병 대가로 러시아가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국방부 역시 지난 9월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 원자로를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확인중이라고 했다. 북한은 2021년 전략 핵잠수함 개발 의지를 밝혔지만, 잠수함 탑재용 소형 원자로 기술은 미국·러시아·중국 등만 갖고 있다. 우르사 마요르호에 북한에 갈 원자로가 실렸다면,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 핵심 기관을 넘기려 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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