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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한국인의 가상자산이 위험하다

머니투데이 정구태인피닛블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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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한국인의 가상자산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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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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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발생한 수백억 원의 해킹 사고는 국내 산업의 취약한 기반을 다시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더 시급하게 짚어야 할 지점은 사고 자체보다 대응방식이다. 과거 몇 년 전 국내 1·2위 대형 거래소가 연달아 해킹을 당했을 때도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고 결국 전액 보상이라는 임시처방으로 상황을 봉합하는 데 그쳤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넘기려 한다면 한국 가상자산산업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국내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닌 구조적 불안정성이다. 상장에서부터 매매, 예치, 운용 등 모두 한 조직 안에 묶여 있는 구조에서는 높은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사후 보안 강화나 피해자 구제와 같은 단기 미봉책만 반복해왔다. 이제는 단기 땜질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을 지탱할 튼튼한 생태계와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100조원 이상의 한국인 자산이 소수 거래소에 집중되는 동안 외국인과 법인 투자가 사실상 배제된 환경 또한 지속되고 있다. 이는 특정 산업,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의 리스크다. 예기치 못한 시스템 충격이 현실화될 경우 가처분소득 감소, 소비 위축, 실물경제 둔화 등 국민경제 하방압력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는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결국 한국인의 자산이 북한의 무기개발에 악용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사고 과정에서 거래소의 외부 입출금이 차단되자 일부 종목에서 극단적인 '가두리 펌핑' 현상까지 발생했다. 유동성이 막힌 상태에서 투기세력이 등장하며 일부 코인의 프리미엄은 100% 이상 치솟았다. 해킹과는 별개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모든 기능을 한 조직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전형적 부작용이다. 독과점을 형성하는 기업의 장애 조치가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산업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 거래소가 산업의 거의 모든 기능을 쥐고 있고 특히 상위 업체에 고객과 거래가 몰려 있는 현재 방식은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거래소, 수탁사, 평가사, 운용사, 감시기구 등 업무 특성에 따라 기능이 분화돼야 한다. 이를 통해 각자의 이해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견제·보완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는 전통 금융의 역할 분담과 유사해 보이지만 국내 특성에 맞는 새로운 표준과 운영원칙이 필요하다.

부정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가상자산은 우리 경제의 일부분이 됐다. 이제는 그에 걸맞은 원칙과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보상했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 산업은 미래 성장동력이 아니라 국가적 리스크로 남게 될 것이다. 한국 가상자산산업의 앞날은 우리가 지금 구조적 문제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파헤치고 실제 변화로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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