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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은 서해 피살 유족의 ‘항소’ 호소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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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은 서해 피살 유족의 ‘항소’ 호소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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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최근 1심 무죄 판결이 나온 ‘서해 공무원 피살 은폐’에 대해 “없는 사건을 만들고, 있는 증거를 숨기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려고 시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책임을 묻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민석 총리도 “사실상 조작 기소로 볼 수 있는 정도”라며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서해 사건의 항소 포기를 공개 요구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는 서해 사건을 ‘조작’이라고 했지만 1심 재판부는 ‘조작’이란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소각된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건 보고를 받고 26시간이 지나서야 국민에게 알린 사실 등을 인정했다. 당시 국방부와 국정원이 관련 첩보와 보고서를 대량 삭제한 것도 검찰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1심은 이런 사실과 정황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형사처벌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무죄 판단은 ‘조작’ 때문이 아니라 ‘증거 부족’이라는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가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소 제도는 1심의 오판 가능성 때문에 두는 것이다. 경험 많은 판사라도 사실 관계를 오인하거나 증거 판단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2심에서 검찰은 증거를 보완한다. 서해 사건 직후 국방부와 국정원이 삭제한 문건이 5000건이 넘는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이게 덮을 일이냐”고 반발했다는 진술도 있다. 그런데도 1심 재판부는 “업무와 무관한 직원들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라며 은폐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문 정권은 유족의 정보 공개 요청을 거부하더니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봉인했다. 은폐가 아니라면 왜 이렇게 했겠나. 2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한다.

1심은 문 정권이 공무원을 월북으로 몰아갔다는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경이 ‘해상 추락’으로 보고했는데도 청와대 회의에선 ‘월북’으로 바뀌었다. 해경청장은 수사팀의 반대에도 “월북이 맞다”고 밀어붙였고,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자 “난 안 본 거로 하겠다”고 했다. 월북 이유를 지어내려 피해자의 빚까지 부풀렸다. 조작이 있다면 이것이 조작이다.

피살된 공무원의 어린 딸은 재판부에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 사람들에게 벌을 주세요”라는 편지를 썼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다면 억울하게 죽은 국민의 명예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마저 없어지는 것이다. 항소 기한이 다음 달 2일이다. 검찰은 ‘항소해달라’는 유족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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