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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병오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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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병오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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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나 어릴 적 글 배우러 간 병오년/ 생애 돌아보니 가는 곳마다 초가 살림/ 화답하는 벗이라곤 어부와 나뭇꾼이지만 늘 만족한다 말하고/ 집안에 있는 거라곤 푸성귀에 거친 밥이지만 더 바랄 것 하나 없네/ 어렵고 험한 오늘을 탄식할 것 없어라/ 내 돌아갈 곳 옛사람의 글이 있으니/ 가련토다 명예와 이익을 좇는 사람들/ 종신토록 허덕여도 끝내 공허뿐인 것을.”

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 평생 옛글만 읽으며 가난한 삶에서도 즐거움을 누리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이다. 집안 살림이 어찌 되든 공자 왈 맹자 왈하는 모습이 오늘의 시야에 좋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한편으론 각박한 현실을 초탈한 여유로움에서 예스러운 멋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어느 때, 어느 선비가 지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이상을 표현했고, 그만큼 상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시가 1905년 을사년 섣달 그믐날에 면암 최익현이 지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시가 다르게 읽힌다. 도끼를 지니고 엎드려 병자수호조약에 결사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배를 무릅쓴 거듭된 상소로도 뜻이 관철되지 않고 일본의 침탈이 현실화되자 최익현은 결국 항일의병운동을 이끌게 된다. 11월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이듬해인 병오년 정월에 궐기하기로 선비들과 약속한 때가 이 시를 짓기 며칠 전이었다. 최익현이 스승 이항로를 찾아 학문의 길에 들어선 것은 60년 전의 병오년, 14세 때 일이다. 이제 74세가 되는 병오년에 평생 배운 학문을 실천으로 옮겨 우국충정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을사년의 마지막 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은 시이다.

음력과 양력의 차이는 있지만, 2026년 우리에게도 병오년이 주어진다. 무엇으로 지난 삶을 돌아보고 내년을 기약할까. 최익현이 돌아갈 곳으로 삼았던 옛 사람의 글을 그대로 우리의 신념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죽은 문자가 아니라 의연한 실천으로 살려내려는 시점에 담담하게 써내려간 최익현의 시를 읽으며, 그로부터 두 번째 병오년을 맞는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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