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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악몽이 된 아메리칸드림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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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악몽이 된 아메리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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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글로벌경제부 기자

김슬기 글로벌경제부 기자

올해 미국에서 호평받은 영화 '기차의 꿈'은 한 육체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렸다.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진 20세기 초, 기차 레일을 깔기 위해 나무를 베는 벌목꾼 로버트는 평생 악몽에 시달린다. 함께 일하던 중국 이민자가 이유 없는 괴롭힘 끝에 강 아래로 밀려 떨어져 죽는 사건을 말리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처럼 서부 개척 시대부터 이민자의 노동력에 기대 성장했지만 이들에게 자행한 차별과 핍박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다.

100년 넘게 지난 지금도 미국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성탄절에 뉴욕타임스(NYT)가 미국 J1(비이민 교환방문) 비자로 입국한 청년들의 학대를 고발한 보도는 충격적이다. 보도에는 한국 대학생 강 모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그는 수수료로 5000달러(약 725만원)를 내고도 인디애나주 제철 공장에서 교육도 없이 정화조 청소를 강요당했고, 이를 고발하자 추방당했다.

악덕 스폰서 업자들은 비자를 미끼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꾼 청년을 모집해 수수료를 챙겨 큰돈을 벌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연장 근로와 착취, 성희롱까지 만연했다. 노예 무역으로 배를 불리던 과거 미국 농장주와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전 세계에서 매년 J1 비자로 미국에 향하는 이는 30만명에 달한다. 1960년대부터 국무부가 운영한 J1 비자는 애초에 미국과 세계 간 상호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반세기 만에 목적이 변질됐다.

심지어 미국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해외 기업의 파견 노동자를 불법 입국을 이유로 체포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자국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8만명 규모의 수용소까지 짓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 고급 일자리를 만들라고 외국 기업을 압박하고, 동시에 힘든 노동을 위해서는 해외 청년을 노예처럼 사 오고 있는 것이다. 이익 앞에서는 원칙도 인권도 없는 세계 최강대국의 두 얼굴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슬기 글로벌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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