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를 깨우는 리더십 인사이트(35)
리더 대신 AI에 묻기 시작할 때, 조직은 멈춘다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성장의 계단을 만들어라
리더 대신 AI에 묻기 시작할 때, 조직은 멈춘다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성장의 계단을 만들어라
AI는 이미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냅니다. 이 환경에서 리더가 여전히 ‘내가 더 잘 아는 사람’으로 남으려 하면 팀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리더가 만드는 또 하나의 멈춤이 있습니다. 바로 팀원들이 리더에게 묻지 않고, AI에게 먼저 묻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많은 리더가 이를 두고 “요즘 애들은 사람보다 AI를 더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리더의 태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원들이 리더보다 AI에 의존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대부분 리더가 사람을 키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의 아웃풋에만 욕심을 낼 때입니다. 과정은 묻지 않고 결과만 요구하고, 생각은 듣지 않고 답만 빨리 가져오라고 재촉할 때, 팀원들은 판단을 연습할 기회를 잃습니다. 그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팀원에겐 리더가 아니라 AI입니다. AI는 기다리지 않게 하고, 혼내지 않으며, 결과를 즉시 내놓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팀원은 성장하지 않고, 리더는 점점 더 통제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팀원들은 판단을 포기하고, 생각을 멈추며,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축소시킵니다. 리더에게 가도 배울 것이 없고, AI에게 가면 답이 나오니 굳이 리더를 통과할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AI 시대 리더의 일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자라게 한다는 것은 가르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 성장은 멈춥니다. 대신 리더는 일을 ‘학습의 경로’로 바꿔줘야 합니다. 많은 리더가 여전히 “이건 네가 아직 하기엔 어려워”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선을 긋는 말입니다. 그 선 너머는 AI가 대신합니다. AI 시대의 리더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 판단은 아직 어렵다. 대신 여기까지는 네가 해보고, 이 다음 단계는 내가 이어갈게.” 이 말에는 평가가 아니라 ‘계단’이 담겨 있습니다. 팀원은 그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자신의 성장 위치를 인식하게 됩니다.
문제가 있는 조직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많지만, 어디까지 잘하면 다음 단계로 가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은 쉽게 냉소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AI가 채웁니다. AI는 분명합니다. 입력값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는 기준이 명확할수록 팀원들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리더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을 줄이고, “지금은 이 레벨에 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좌표 제시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알 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AI 시대에는 도구 사용의 구분도 중요합니다. 정보 수집과 정리는 AI에게 맡기되, 선택의 기준과 최종 판단은 반드시 사람이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리더가 결과만 빨리 가져오라고 하면 이 구분은 무너집니다. 팀원은 판단까지 AI에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는 답을 요구하기보다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이 안을 선택했는지, 이 결정의 리스크는 무엇인지, 다른 선택지는 왜 배제했는지를 말로 설명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리더의 태도가 다시 중요해집니다. 리더가 조급해지는 순간, 팀원은 위축됩니다. 빨리 결론을 내리고, 대신 판단해주고, 결과만 챙기기 시작하면 팀원은 스스로 생각할 이유를 잃습니다. 그 순간 리더는 성장의 조력자가 아니라 병목이 됩니다. 리더는 앞에서 끌어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방치가 아닙니다.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실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허락하며, 속도를 맞춰주는 일입니다.
‘하학상달’(下學上達)이라는 말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아래에서 차근차근 배우며 위로 올라가는 과정은 여전히 리더 성장의 본질입니다. 다만 이제 리더는 혼자 올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음 리더가 올라올 길을 닦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AI가 답을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남겨야 할 것은 기준과 판단, 그리고 성장의 방향입니다.
■문성후 대표 △경영학박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