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호 전 방사청장·전북대 K방위산업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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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요구사항 제대로 못 읽어
캐나다 잠수함 입찰 앞두고 비상
방사청장, 컨트롤 타워 역할 해야
한국 측은 발표 직전까지도 프랑스와 독일을 경쟁 상대로 여겼다. 스웨덴은 안중에도 없었다. 폴란드가 접한 발트해는 평균 수심 50m 전후의 얕은 바다다. 한국 측이 제시한 3600t급 잠수함보다 스웨덴의 2000t급 잠수함이 더 적합했는데 이런 폴란드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최종 의사결정 시기도 몰랐다. 폴란드는 유럽연합(EU)의 방산 구매 기금(SAFE)을 활용하지도 않았다. 폴란드의 선택이 유럽의 짬짜미도 아니었다.
국제 방산시장에서 수주 실패는 다반사다. 그러나 이번 폴란드 사례를 어물쩍 넘기면 앞으로도 수주 실패가 잇따를 수 있다. 내년에 결판 날 캐나다 초계 잠수함 사업은 3000t급 디젤 잠수함 8~12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폴란드 사업에 비해 규모가 5배나 되는 초대형 사업이다. 여기에서도 패한다면 K방산의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첫째, 방산 현장 컨트롤 타워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방산 수출은 2020년 29억 달러에서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러다 2023년 135억 달러, 2024년 96억 달러로 급감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방산 현장 컨트롤 타워 기능이 정지됐기 때문이다. 방산은 연구개발(R&D), 방산기업, 방산 정책 등 세 분야의 현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현장을 유기적으로 결속해야 방산 수출이 활력을 얻는다.
방위사업청 청장이 컨트롤 타워 기능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전임 정부는 “연구개발 카르텔을 타파하겠다”면서 국방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방사청은 전력 증강에만 집중하고, 방산 수출은 국방부 중심으로 이뤄졌다. 국방부는 방산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보니 아무래도 현장 감각이 떨어진다. 그나마 K방산의 흐름은 방산기업들이 가까스로 이어갔다.
이재명 정부가 국방 R&D 예산을 대폭 증액했으니 연구개발은 신속히 복원될 전망이다. 이제 방사청의 방산 현장 컨트롤 타워 기능의 회복만 남았다. 방사청장이 직접 상대국의 최고위직을 만나 경쟁 상대의 수준 등을 파악해 관련 정보를 실무자와 공유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캐나다 초계 잠수함 사업에서 한국의 경쟁자는 독일의 TKMS(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다. 재래식 추진 잠수함 분야에서 세계 최대 공급자다. 1980~90년대 한국의 1200t급(장보고-I) 잠수함 도입 당시 설계·건조·용접 등 핵심 건조 기술을 전수한 조선소가 독일 하데베(HDW)인데, TKMS가 2005년에 하데베를 인수·합병했다. 게다가 최근 캐나다가 SAFE를 활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원팀으로 출전했지만 버겁다. 한국 팀이 제안한 3000t급 잠수함 성능이 앞선다고 방심하지 말자. 방사청장을 중심으로 점검 토론을 진행하되 반드시 레드팀을 운영해 우리 잠수함의 비교우위와 약점을 냉정하게 파헤쳐야 한다. 잠수함의 핵심 구성품에서 약점이 없는지 살피고, 보완 방안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실이 중심이 되어 ‘계층적 범정부 방산 컨트롤 타워’를 활용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이 방산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범정부 협력 방안을 실무적으로 협의하고, 국방부가 외교부·산업통상부·문화체육관광부 등 부처 간에 조율한 뒤 대통령실이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방식이다. 2022년 173억 달러라는 수출 성과가 가능했던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을 낙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승률이 40% 미만이라고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 방산 분야 특사 활동도 필요하다. 다만 결정적인 시기를 선택해 가급적 비공개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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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호 전 방사청장·전북대 K방위산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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