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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에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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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에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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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유가족들과 함께 29일 무안공항에서 열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181명을 태운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는 2024년 12월29일 오전 9시3분경 정상 착륙하지 못하고, 콘크리트 둔덕으로 만들어진 로컬라이저를 들이받고 불길에 휩싸였다. 2명만 살았고, 179명의 신체는 산산이 부서졌다. 과학수사관들은 주위를 샅샅이 뒤져 신체 파편들을 찾아내야 했다. 그곳을 수색했던 과학수사관들은 “가장 참혹한 현장”이었다고 증언하고, 그들 중 약 18%가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TSD)에 시달리고 있고, 유가족 중 90%가 우울증세를 보이며, 4명은 세상을 떠났다.

불신에 불신을 낳은 ‘사고조사위’

추모식장 곳곳에는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밝힐 수 있다”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집약한 절절한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만약 조류충돌 위험이 높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 둔덕이 아니었다면,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였다면 등의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전 9시3분 추모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10시 열린 추모식에서 부모님과 동생을 잃은 유가족 대표가 “손가락 하나라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정보 공개 0건, 사과 0건, 책임자 처벌 0건”이라며 위로보다는 진상규명을 간절히 호소했다.

추모공연의 제목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희생자 179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렀고, 항공권 모양의 카드가 추모식장 통로에 놓였다. 처음엔 작았던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권리가 있다”는 귀가권을 강조했다. 상식인 안전한 귀가도 보장 못하는 나라에서 피해자들은 모욕과 핍박, 기만을 견뎌내며 싸워야 하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앞서 유가족이 된 이들이 새로 유가족이 된 이들을 찾아가 “우리가 잘 싸웠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말을 채 맺지 못한다. 1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아직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텐트를 치고 그곳을 지키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는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로컬라이즈 조사를 제외한 채 조종사의 실수를 원인으로 꼽는 조사 결과를 굳히려다가 유가족들의 반발로 현재 사실상 조사를 중단한 상태다. 밀실 조사, 셀프 조사로 불신을 자초한 조사위는 이제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토부에서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 소속이 바뀐다.


독립적 중대재난조사기구 절실

2022년 9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등을 목적으로 활동했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활동을 종료했다. 사참위는 활동을 끝내면서 중대재난조사위원회(가칭) 설립을 국회와 정부에 권고했다. “현행 재난조사 시스템은 부처 자체 조사에 기대고 있어 조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근본적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 역할에 한계가 있고, 조사기구 대부분이 비상설로 운영됨으로써 조사관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조사 전문성 축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조사 뒤에 이행점검도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상설 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사참위의 권고는 현재까지 무시되고 있다.

생명·안전을 외면하다가 이태원 참사를 맞게 했고, 비상계엄과 내란으로 국민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을 만들려다가 탄핵된 윤석열 정권에서는 요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국민주권정부라는 현 정부에서는 독립적인 중대재난조사기구가 설립될 수 있을까? 최근 생명안전기본법안 논의를 위해 관계 부처를 만난 결과로는 무척 회의적이다. 그들은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를 설치, 운영한다고 하면서 비상설 기구를 상정하고 있었다. 독립성과 전문성, 민주성을 갖추고, 이행점검까지 할 수 있는 조사기구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매번 똑같았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년을 보고도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지 못한다면, 닮은꼴의 재난참사를 막지 못할 것이다. 참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나라에 귀가권의 보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재난안전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앞선 유가족들이 새로 된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하지 않게,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게 결단할 때다. 이미 늦었다.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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