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뷰’ 케데헌 신드롬에 거세진 ‘K’ 열풍
넷플릭스 올해에만 31편 작품 공개 ‘독주’
‘고군분투’ 토종 OTT, 차별 콘텐츠·해외 진출
스타 파워의 실종…‘여성들의 서사’ 주목받아
넷플릭스 올해에만 31편 작품 공개 ‘독주’
‘고군분투’ 토종 OTT, 차별 콘텐츠·해외 진출
스타 파워의 실종…‘여성들의 서사’ 주목받아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올해의 최고 화제작은 단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다. 역대 넷플릭스 흥행 1위에 이어 이제는 아카데미까지 넘보는 ‘케데헌’의 신드롬적 인기는 국경을 초월한 신(新)한류 시대 도래의 불을 지폈다.
여기에 ‘K-콘텐츠’를 글로벌 주류로 끌어올린 ‘오징어 게임’이 마지막 시즌으로 4년 간의 여정을 마무리했고 ‘폭싹 속았수다’, ‘폭군의 셰프’ 등 한국적인 감성과 소재를 다룬 작품들도 동반 흥행하며 새로운 ‘K’ 열풍에 힘을 보탰다.
이 가운데 한국 진출 10주년을 맞은 넷플릭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화제작을 쏟아내며 독주체제를 굳혔다. 야심 차게 출사표를 던진 대작들이 일부 흥행 실패를 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도 탄탄한 대본과 공감되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시청자의 선택을 받았다.
케데헌의 ‘질주’…한류의 신기원이 되다
지난 8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상영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장식된 2층 버스가 미국 뉴욕의 한 극장 앞에 서 있다. [로이터] |
악귀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K-팝 걸그룹이 가공할 만한 기세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역대급, 최고, 최초의 기록을 모두 휩쓴 이들은 ‘K-컬처’ 확산의 새 이정표가 됐다.
지난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데헌’은 누적 3억뷰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세계는 ‘K-팝’이란 저력 있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오컬트의 만남, 여기에 한양도성, 호랑이와 까치, 한의원 등 ‘케데헌’ 속 한국적인 요소에 열광했다. 지난여름 북미 1100여개 상영관에서 진행된 ‘케데헌’ 싱어롱 상영은 티켓을 모두 매진시키며, 해당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타이틀곡 ‘골든’(Golden)은 K-팝 장르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내년 2월 열리는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송 오브 더 이어’ 등 5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오스카 레이스도 순항 중이다. ‘케데헌’은 내년 3월 예정된 제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 자격을 갖춘 35개 작품 명단에 포함됐다. 주요 외신들은 디즈니가 9년 만에 내놓은 ‘주토피아 2’와 2파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한다.
흥행의 온기는 관광객 증가, K-뷰티·푸드 소비 증가 등 K-컬처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퍼졌다.
김숙영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영화과 교수는 “올해는 미국 내 한류 확산에 있어서 획기적인 해”라면서 “‘케데헌’은 한류를 단발적인 영향에서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시키는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질주’ vs 토종 OTT ‘고군분투’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3’ [넷플릭스 제공] |
‘케데헌’의 기록적 흥행에 날개를 단 넷플릭스는 올해도 OTT 시장을 주도했다. 시리즈 피날레인 ‘오징어 게임 3’과 ‘중증외상센터’, ‘약한 영웅 2’ 등 올해만 31개의 콘텐츠를 공개하며 저력을 보여줬다.
예능에서는 ‘피지컬: 100’과 ‘흑백요리사’와 같은 넷플릭스 흥행 프랜차이즈들의 속편이 공개되며 화제성을 이어갔다. 신규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포화 상태의 연애 프로그램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디즈니+는 스타 캐스팅을 앞세운 대작으로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했다. 야심작이었던 ‘북극성’의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1970년대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은 ‘파인’과 연쇄살인의 진실을 쫓는 ‘나인퍼즐’, 영화 ‘조작된 도시’(2017)의 리메이크 시리즈인 ‘조각도시’ 등이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올해 국내 OTT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계속 생산하지 못하고 콘텐츠 경쟁력이 취약해진 반면 넷플릭스의 콘텐츠 라인업은 좋았던 한 해”라면서 “어느 때보다 넷플릭스의 독주가 강했던 해”라고 봤다.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여기에 토종 OTT의 결합으로 주목받았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연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1세대 토종 OTT’ 왓챠는 지난 5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티빙은 스포츠 콘텐츠들을 앞세워 선전을 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국내 사업자들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서도 합병 시도가 이어진 점은 주목된다”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는 계속됐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봤다.
토종 OTT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위기 반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티빙은 HBO 맥스(Max), 디즈니+ 재팬과 손잡고 글로벌 진출의 첫발을 내디뎠다. 티빙이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과 동시에 선보인 오리지널 드라마 ‘친애하는 X’는 공개 3주 차에 일본 디즈니+ 1위를 차지했고, 아태지역 HBO Max 서비스 국가들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웨이브는 올해만 5편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이며 전년(1편) 대비 탄탄해진 드라마 라인업을 자랑했다. 예능에서는 ‘너의 연애’로 퀴어 연애프로그램에 등 대한 웨이브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이어갔다.
스타보다 서사…공감 얻은 ‘여자들의 이야기’
tvN ‘폭군의 셰프’,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tvN, 넷플릭스 제공] |
올해도 K-드라마 특유의 기획과 창작력이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한 화제작들이 나왔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폭싹 속았수다’를 비롯해 미식과 사극, 판타지를 접목한 tvN ‘폭군의 셰프’는 한국적 소재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범죄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메디컬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입맛을 저격한 가운데, JTBC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와 같은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작품의 흥행이 돋보였다. 이 교수는 “로맨스물을 비롯해 한국이 전통적으로 잘해왔던 장르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올해는 여성 캐릭터의 관계성에 무게를 둔 드라마들의 흥행이 두드러졌다. tvN ‘미지의 서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JTBC ‘백번의 추억’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와의 연결 구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간 관계 속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려낸 점이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다.
tvN ‘미지의 서울’ [tvN 제공] |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제공] |
쌍둥이 자매의 성장기를 담은 ‘미지의 서울’은 전국 기준 최고 9.4%의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고, 30년에 걸친 두 친구의 인생과 사랑, 우정, 질투 등을 그린 ‘은중과 상연’은 전 세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공개 2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OP10 5위에 올랐다.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과거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는 결과적으로는 가부장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올해는 그곳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었다”면서 “여성들의 관계성에 중심을 둔 서사와, 이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되는 스토리텔링들이 흥미롭게 볼 만한 지점이었다”고 분석했다.
스타 감독과 작가, 배우들을 앞세운 기대작들의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 전지현·강동원 주연의 텐트폴(고예산 작품)인 디즈니+ ‘북극성’과 이민호·공효진이 연기한 tvN ‘별들에게 물어봐’, 마동석과 이영애가 각각 주연한 KBS ‘트웰브’, ‘은수 좋은 날’ 등이 대표적이다. 스타 파워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면서 내실 있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는 한 해가 됐다.
윤 교수는 “스타파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러티브가 탄탄해야 한다.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흐름이 전제되지 않으면 스타파워는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기대작들의 흥행 실패는) 스타급 명성에 의지하고 있는 기획과 제작, 편성 등의 낡은 관행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