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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붉은 말의 해, K석화가 다시 뛴다

이데일리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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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붉은 말의 해, K석화가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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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올 한 해 우리 석유화학산업은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시간이었다. 같을 동(同), 배 주(舟), 함께 공(共), 건널 제(濟)라는 글자 그대로 ‘같은 배를 타고 어려운 위기를 극복해 함께 강을 건넌다’는 뜻을 담고 있는 한자성어처럼, 돌이켜 보면 우리 석화업계는 그 어떤 해보다 거센 물살을 함께 건너야 했던 한 해였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 탈탄소 압박이라는 복합적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과 유럽 주요국들 역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후설비 폐쇄 등을 통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사업재편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다.

8월 산업통상부의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방향 발표를 계기로 주요 석화기업들은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기업들이 업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최대 370만 톤(t)까지 감축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다만 각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상황에서 이런 합의가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치킨게임’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필자의 입장은 다르다. 기업들은 생존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며 뜻을 모았다. 위기를 외면하지도,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여수·대산·울산 3개 석유화학 산단의 16개 NCC·프로판탈수소화시설(PDH) 기업 모두가 정부가 제시한 기한 내에 사업재편안을 제출했다. 뼈를 깎는 각오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개별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위한 사업재편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2025년은 우리 석유화학 산업사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남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또한 빛났다. 발 빠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피력해 사업재편 논의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정부였다. 기업들이 당장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아우르며 국가 산업 경쟁력 전체를 감안한 대승적인 판단과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다. 나아가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체적 실행 수단도 함께 제시했다. 바로 지난주 출범한 민관 협력 플랫폼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를 통해 기업들은 친환경·고부가가치 전환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 기획의 큰 동력을 얻었다. 업황 악화로 연구개발에 부담을 느끼던 기업들도 본격적인 미래 경쟁력 확보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범정부적 사업재편 추진 노력에 정치권 역시 힘을 보탰다. 1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그 결과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사업재편의 실행과 구체적인 지원의 뒷받침이다. 석유화학 특별법을 토대로 업계의 경쟁력 회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책을 마련해 새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뼈를 깎는 결단을 내린 만큼, 화학산업협회 역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을 적극 도울 것이다. 사업재편 규제 특례를 넘어 금융·세제 혜택과 R&D 투자 확대 등 특별법이 담고 있는 다양한 지원 방안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업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실행력을 높이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다가오는 2026년은 불꽃처럼 뜨겁게 달리는 붉은 말띠의 해, 병오년이다. 우리 화학업계 역시 이제 논의와 결단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사업재편의 실행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붉은 말이 쉼 없이 달리듯, 친환경·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산업의 체질을 과감히 개선하고 경쟁력 회복을 향해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면 우리 화학산업이 국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축으로 뜨겁게 재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