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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참사'라는 이 한국영화, 72개국 1위에 오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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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참사'라는 이 한국영화, 72개국 1위에 오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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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대홍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대참사’라 불리며 집중포화를 맞고도 넷플릭스 영화 부문 주간 순위 1위에 오른 한국영화가 있다. 총 300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19일 공개)가 주인공이다.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이 영화는 시청자들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28일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 관람평 4.12점(10점 만점)을 기록 중이다. 반면 흥행에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에선 이달 셋째 주(15~21일) 2,790만 시청 수로 비영어·영어 영화 통틀어 1위에 올랐다.

영화에 대한 엇갈리는 반응은 제목에 힌트가 있다. ‘대홍수’라는 제목과 고층 아파트가 물에 잠기는 사진만 보면 누구나 극한의 재난 상황을 예상하지만, 이 영화는 재난영화가 아니다. 누가 봐도 재난영화의 도입부로 시작하기에 장르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시청자를 당혹하게 할 만하다. 주인공 구안나(김다미)가 ‘다윈센터’에서 이모션 엔진이라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라는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복선이다.

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파도 소리로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잠자고 있는 안나를 비춘다. 바깥이 수영장이 됐으니 수영하러 가자는 아들 자인(권은성)의 성화에 눈을 뜬 안나는 거실 창밖으로 파도가 출렁거리며 틈새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다. 다윈센터 인력보안 요원 손희조(박해수)의 안내에 따라 어렵사리 옥상에 도달하지만 구조팀은 안나에게서 자인을 ‘회수’하겠다고 말한다.

로켓에 탑승한 안나가 우주로 나가면서 영화는 SF 장르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신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인류는 그 안에 담을 마음, 즉 이모션 엔진을 개발 중인데, 아이의 이모션 엔진을 완성한 안나의 다음 임무는 어머니의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안나가 아들을 구할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것이 실험의 골자다.

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영화 '대홍수'. 넷플릭스 제공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전지적 독자 시점’의 김병우 감독은 “영화 같은 재난 이후 인류의 다음은 어떻게 될까 생각했던 것을 엮어서 쓴 시나리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AI 딥러닝이란 소재를 쓴 것에 대해선 “사실상 생물학적 진화를 마친 인류의 다음 진화를 생각했을 때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며 “가장 큰 난제는 사람의 마음일 테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대홍수'의 김다미. UAA제공

영화 '대홍수'의 김다미. UAA제공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시종일관 젖은 채로 연기해야 했던 주연 배우 김다미는 섬세한 연기로 대재난의 상황을 납득시킨다. 115회 차 촬영 중 105회 정도 출연했다는 그는 “제 출연작 중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게 찍은 작품”이면서 “반복되는 장면이 많아 세세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게 신경 써야 했다”고 했다. 영화를 다시 보면 안나의 얼굴에 붙은 스티커, 티셔츠 위의 숫자 등 소품의 배치나 반복되는 장면의 차이에서 감독과 배우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 '대홍수'의 김병우 감독. 넷플릭스 제공

영화 '대홍수'의 김병우 감독. 넷플릭스 제공


한 번의 시청으론 간파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탓에 ‘대홍수’를 본 시청자들의 평점은 1~2점과 8~10점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작품을 깎아내리는 이들은 개연성 부족과 매끈하지 않은 이음새, 갑작스러운 장르 전환, 과학적 설정 오류 등을 지적한다. 반면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참신한 시도라는 호평이 늘면서 첫날 공개 직후 2점대였던 네이버 평점도 다소 오른 상태다. 평단의 반응도 나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철학의 부재가 빚은 대참사”라고 혹평한 반면, 영화평론가 출신 방송인 허지웅은 “그렇게까지 매도돼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옹호했다.

계속되는 갑론을박이 넷플릭스로선 호재가 되고 있다. 28일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대홍수’는 공개 이튿날인 20일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에 오른 뒤 27일까지 8일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다. 세계 72개국 1위에 올랐고 27일에도 여전히 53개 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30편에 가까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 가운데선 최고 기록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