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
경찰이 정치권 인사들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첫 강제수사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본부 로비에 한학자 통일교 총재(오른쪽)와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사진이 걸려 있다.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이날 오전 9시께부터 경기 가평 통일교 천정궁과 서울 용산구 통일교 서울본부 등 10곳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 중이다. /연합뉴스 |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28일 정원주 전 통일교 총재 비서실장과 통일교 울산·부산 지회장 박모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조사 때 참고인 신분이었던 정씨를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등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이날 참고인 조사를 받은 박씨는 총선을 앞둔 2020년 3월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자서전을 전달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인물이다. 그는 영남권 여야 정치인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한일 해저터널 등 통일교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 정치권 로비 ‘투 트랙’ 수사
경찰은 통일교 로비 의혹에 대해 ‘투 트랙’으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첫 번째는 2018~2020년쯤 전재수 의원과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이 내용을 특검에서 처음 진술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을 지난 26일 구치소에서 체포해 강제 조사를 벌였다.
한편 경찰은 통일교 계열 비정부기구(NGO)인 천주평화연합(UPF)의 송광석 전 한국회장이 2019년 초 여야 정치인 10여 명에게 100만~200만원씩 불법 후원한 혐의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송씨를 지난 24·26일 두 차례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임박한 전 의원을 지난 19일 조사했지만, 임종성·김규환 전 의원에 대해선 소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송씨와 관련된 정치인 후원 의혹에 대해선 통일교 관계자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 중이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선 “전 의원 등의 혐의는 입증이 어려우니까, 송씨 쪽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픽=이진영 |
◇재단 만들어 현안 청탁... 정치인 후원도
통일교는 세계본부를 정점으로 각계 각층에 여러 조직을 두고 있다. 예컨대 통일그룹은 각종 리조트와 건설사, 언론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체로,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각종 재단을 설립·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의 숙원 사업은 주로 비영리 재단을 통해 추진됐다.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위해 세운 세계평화도로재단이 대표적이다. 통일교 측은 이 단체를 통해 한일 해저터널 관련 세미나 등 행사를 열고, 이 자리에 정치인들을 부르는 방식으로 청탁해 왔다. 특히 임종성 전 의원은 이 재단의 명칭을 변경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11월 20~22일 TM(True Mother) 보고에는 “임 전 의원의 협조를 받아 세계평화터널재단을 세계평화도로재단과 영문명 월드피스로드재단으로 명칭 변경 승인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 효정국제문화재단 산하 효정문화원은 전재수 의원의 책 ‘따뜻한 숨’ 500권을 구매하는 등 간접적으로 정치인을 후원한 정황도 드러났다. 전 의원의 책 구매는 2019년 11월 윤영호씨가 효정문화원장으로 있을 때 이뤄진 일이다.
◇NGO는 정치인 접촉 창구로 활용해
통일교는 유관 기관으로 NGO를 만들어 정치인과 교류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2005년 설립된 UPF는 남북 통일, 평화 이슈와 관련해 국내외 활동을 하는 단체다. 통일교는 이 단체가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포괄적 협의 지위’를 받는 등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단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UPF도 정치인들을 동원해 교세를 확장하는 수단이 됐다. 윤영호씨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 접촉을 시도했던 ‘월드서밋’도 UPF가 주관하는 행사였다.
통일교는 2016년 UPF 산하 대외 교류 기구인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도 만들었다. 이곳에는 전현직 정치인들이 직접 회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성 전 의원의 경우 IAPP 한국의장을 맡기도 했다. IAPP는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도 고문으로 위촉해 고문료 1400만원을 지급했고, 2018년 개최한 행사에는 통일교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전 의원과 임·김 전 의원 등이 모두 참석했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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