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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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끝나면 관계도 끝나나
이주민 끌어안는 노력 태부족
함께 살 준비 됐는지 돌아봐야
김지윤 기자 |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아이가 같은 학교를 다녀도 학부모로서의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병원 대기실, 엘리베이터, 동네 마트에서 수없이 마주치지만 서로 끝내 말을 걸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이주민을 필요로 하면서도, 곁에 두는 데는 극도로 인색하다. 함께 살고 있되, 함께 살아가지는 않는다. 왠지 우리와 같지 않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얼마 전, 한 지역의 다세대 주택에서 있었던 일이다. 베트남 출신 부부와 어린아이가 사는 집을 두고 “소음이 심하다”는 민원이 반복해서 들어왔다. 밤늦게까지 떠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의 소음은 저녁 시간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한국인 가정에도 흔히 있는 풍경이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다른 집도 여럿 있었지만 그 집에 대해서만 유독 민원이 이어졌다. 특별히 더 심한 것도 아닌데 아랫집 주민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었다고 한다.
며칠 뒤, 그 부부는 아이가 뛰지 못하도록 집 안에 매트를 더 깔고, 저녁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누구에게 항의하거나 설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우리가 더 조심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이미 자신들이 이 사회의 손님이라는 인식이 함께 들어 있었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같은 기준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주민은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변부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오가며 하루를 살아간다. 같은 소음과 같은 불편을 감내하고, 같은 물가 상승을 체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러 온 사람으로만 규정한다. 노동이 끝나는 순간, 관계도 끝나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문제는 노골적인 혐오만이 아니다. 혐오보다 더 널리 퍼져 있고,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무관심이다. “괜히 엮이지 말자”는 태도, “조용히 살면 되지 않나”라는 말. 그 말 속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이다. 그 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주민의 일상 속에서는 분명히 작동한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문화 차이를 원인으로 내세운다. 생활 방식이 다르다거나, 의사소통이 어렵다거나, 에티켓에 대한 수준이 다르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차이는 대부분 설명되지 않았고, 조정되지 않았으며, 함께 다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 없이 갈등의 책임을 이주민 개인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역시 문제가 많다”는 근거로 사용한다.
우리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왜 이들은 늘 ‘적응해야 할 대상’으로만 남는가. 왜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은 채, 이주민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가. 공존이란 누군가의 일방적인 적응이 아니라, 서로의 생활 방식을 조금씩 조정해 가는 과정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늘 뒤로 밀린다.
이주민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진짜 질문은 숫자가 아니다. 몇 명이 들어오는가, 어느 나라 출신이 많은가 하는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어떤 위치에 두고 살아갈 것인가, 어떤 관계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노동력으로만 환영하고, 이웃으로는 거부하는 사회라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갈등은 언젠가 혐오라는 이름으로, 혹은 더 깊은 분열로 되돌아올 것이다.
한 해의 끝에서 돌아보면, 한국 사회는 이주민과 관련해 많은 말을 했지만 정작 함께 사는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제도와 숫자, 인력 수급과 단속 계획은 넘쳐났지만,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포용의 노력은 부족했다. 우리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말 뒤에 숨어,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미뤄두고 있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늘 더 나은 내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변화는 거창한 계획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인사를 건네는 일, 설명하려는 태도, 불편함을 함께 조정해 보려는 마음. 이주민을 노동력이 아닌 이웃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 한국 사회의 다음 해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더 편한 마음으로 맞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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