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이 만난 사람] ‘교사 연봉 100배’ 제안도 거부‘EBS 일타’ 윤혜정이 본 불수능
무너져 가는 공교육 지대에서 ‘윤혜정’은 희망이다. 대도시든 산골 오지든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그의 EBS 국어 강의는, 공포 마케팅으로 아이들을 울리고 학부모의 주머니를 터는 사교육의 허를 찌른다. 국어마저 변별의 제물이 된 입시에서 재미와 성적을 다 잡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는 일반고 교사. “선생님 강의를 울면서 들었다”는 아이들 편지가 쇄도하는 이유다.
대치동을 위협하는 ‘EBS 일타’에 대형학원들은 수십억대 러브콜을 보내지만, 거절했다. “부자 되려고 교사 된 게 아니어서, 학교에서 아이들 만날 때 가장 행복해서!” 킬러 문항으로 다시 논란이 된 올해 수능엔 작심 발언을 했다. “최상위권 변별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대다수 아이를 절망시킵니다. 공부 좀 해보려는 아이들의 도전, 희망만은 제발 꺾지 말아 주세요!”
◇ 아이들 자존감 죽이는 킬러 문항
-불수능이 또다시 논란이 됐다.
대치동을 위협하는 ‘EBS 일타’에 대형학원들은 수십억대 러브콜을 보내지만, 거절했다. “부자 되려고 교사 된 게 아니어서, 학교에서 아이들 만날 때 가장 행복해서!” 킬러 문항으로 다시 논란이 된 올해 수능엔 작심 발언을 했다. “최상위권 변별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대다수 아이를 절망시킵니다. 공부 좀 해보려는 아이들의 도전, 희망만은 제발 꺾지 말아 주세요!”
◇ 아이들 자존감 죽이는 킬러 문항
-불수능이 또다시 논란이 됐다.
“2019년 이후 수능이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능력을 올바로 측정하는 시험이 맞나 회의가 든다.”
-국어 독서(비문학) 영역은 전공 교수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이 출제돼 비판받았다.
“예전에도 과학·법·경제 등 비문학 분야에서 지문이 출제됐지만, 이 정도로 난해하진 않았다. 나조차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지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교사가 이 정도면 아주 우수한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 아이는 진입조차 못 한다는 얘기다.”
-1등급 변별을 위해 고난도 문항 출제가 불가피하다는데.
“고난도라고 무조건 해독이 어려운 지문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지문의 난도는 낮추고 선지를 정교하게 다듬는 방식으로 변별할 수 있다.”
-문제를 1개당 평균 1분 47초 내에 풀어야 한다더라.
“막대한 정보량을 던져놓고 제한된 시간 안에 정답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인(in)서울, 그중에서도 최상위권 아이들을 변별해내기 위한 시험이다. 이렇게 되면 5등급 언저리에 있는 대다수 보통 아이들은 국어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만점자가 나온다.
“수능 만점자가 몇 명인지가 우리 교육에 얼마나 중요할까. 평범한 다수의 아이가 ‘나도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평가 방식이어야 한다.”
-수능 폐지론도 나온다.
“수시나 학생부종합 전형이 본래 취지대로 가면 이상적이지만, 아이의 개별 환경과 인프라, 교사의 열의에 따라 주관적 평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수행 평가 등 교과 성적 외에 챙겨야 할 건 또 얼마나 많은가. 다 잘해야 하니 아이들이 숨 쉴 틈이 없다.”
-수능 폐지보다 개선이 낫다는 뜻인가?
“열심히 공부하면 수능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루트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2010년대 수능만 해도 아이들 사고력을 측정하기에 꽤 괜찮은 도구였다. 객관식 문제여도 추론력, 창의력까지 측정할 수 있게 설계됐다. 대안이 분명 있을 것이다.”
◇ 방과 후 수업에서 싹튼 ‘개념’
-EBS에서만 19년째 강의하고 있다.
“고인 물이다(웃음). 예전엔 ‘첫 마음’을 다지며 강의했는데, 요즘은 ‘끝 마음, 마지막’이란 각오로 수업한다.”
-수능 국어의 바이블로 꼽히는 ‘개념의 나비효과’ 강의는 누적 조회 수 1억, 수강생 183만명을 돌파했다.
“수능 국어는 범위가 특정되지 않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시험엔 난생처음 보는 시와 소설, 비문학 지문들이 마구 등장해 그야말로 멘붕이다. 그러나 국어의 기본 개념을 알면 처음 보는 작품도 읽어내고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한 것이 도움을 준 것 같다.”
-수학도 아닌데, 국어에 ‘개념’을 적용했다.
“‘개념’ 강의를 처음 시작한 2011년만 해도 ‘국어에 개념이 어디 있어?’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개념을 모른 채 닥치는 대로 문제만 풀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와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개념과 논리를 알게 되면 낯선 작품도 거뜬히 읽고 해석해낼 수 있다.”
-첫 부임지였던 면목고에서의 방과 후 수업이 ‘개념 공부’의 출발이었다고.
“당시만 해도 면목고는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교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도 많아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국어에 흥미도 느끼고 성적도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만든 수업안이 밑거름됐다. EBS 강의를 본격 시작하면서 교과서, 기출문제들을 탈탈 털어 집필한 책이 ‘개념의 나비효과’다. 난생 처음 보는 지문을 아이 스스로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논리적 도구를 제공한 것이 뿌듯하다.”
◇ 모두를 울린 ‘너에게서 온 편지’
-입문편 1강은 시(詩)로 시작한다. 밥 딜런,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들려준다.
“요즘 아이들은 노래를 끼고 사는데도 ‘시’라고 하면 두려워한다. 드라마와 영화는 좋아하면서 ‘소설’이라고 하면 어려워하고.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시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줘서 기뻤다.”
-‘너에게서 온 편지’ 코너는 윤혜정 강의의 시그니처다.
“전국 곳곳의 수강생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매강의마다 한통씩 읽어주는데, ‘공부하느라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란 생각에 아이들이 힘을 얻는다더라. 내게도 큰 힘이 된다. 모니터 속 선생님을 진짜 학교 선생님처럼 좋아해 주니까. EBS 강의를 20년 가까이 지속하게 한 원동력이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 많더라.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을까?
“고3 때 말기암 진단을 받은 제주 아이 현우. ‘투병 중이지만 선생님 강의 들으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읽어주다가 울어버렸다. 수능을 앞두고 병원에 두 달간 입원해 있을 때도 EBS로만 공부했다는 현우가 바라던 서울대 역사학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밥을 사주러 학교 앞에 갔더니 예쁜 꽃을 들고 나왔더라.”
-국어 교사가 되어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고.
“내 강의를 들은 아이들 중 교사가 된 경우가 많아 신기하다. 실제로 새로 부임한 초임 국어 교사가 ‘저도 윤혜정 나비효과로 공부했어요’ 하며 인사해서 정말 반갑고 예뻤다.”
-윤혜정은 ‘불량 엄마’들도 좋아한다. ‘책 많이 안 읽었어도 1등급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책 많이 읽은 아이가 어휘력, 이해력, 집중력이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많이 안 읽었다고 해서 국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꼭 책이 아니어도 영화, 웹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력을 키운다. 책을 안 읽어서 국어는 망했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을 다 읽어도 처음 보는 지문을 읽어낼 수 있는 논리적 힘, 개념의 힘이 없으면 좋은 성적 받을 수 없다.”
-‘개념의 나비효과’를 완강하면 1등급 받을 수 있나?
“세상의 어떤 강의도 완강(完講)한다고 해서 성적이 저절로 오르는 건 아니다. 교사는 답을 찾아가는 길, 효율적인 공부법을 알려줄 뿐, 이를 기반으로 혼자서 공부하고 ‘내 것’으로 다지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시험장에는 선생님 없이 혼자 가야 하니까(웃음).”
수학 강사 정승제와 함께 EBS 다큐 프라임 '공부 불안'에 참여한 교사 윤혜정. 그는 "불안과 공포 마케팅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를 울리는 사교육에 화가 난다"고 했다. /EBS 화면 캡처 |
◇ ‘불안’ 전염시키는 최악의 공부법
-최근 EBS와 ‘공부 불안’을 주제로 다큐를 촬영했더라.
“전국 각지의 초·중·고생들을 만났다. 놀랍게도 강남 8학군이든, 농어촌 지역의 아이든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더라. 올바르지 못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잘못된 공부법으로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잘못된 공부법이라면.
“초등 5, 6학년 아이들이 수능 기출 문제를 풀고 있더라. 아이들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는 학원들이 평가원 문제를 풀게 하면서 ‘어렵지? 그러니 빨리 시작해야 해’ 하며 부추기는 모습에 분노했다. 이런 공부법 때문에 재미있게 책을 읽던 아이들마저 국어를 고통스러운 과목으로 여긴다.”
-‘집을 팔아도 국어 성적은 못 올린다’고 하니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닐까?
“아이의 발달 과정, 교육 과정에 맞게 어휘력과 이해력을 높여나가도 충분히 1등급 받을 수 있다. 로스쿨 지문을 읽어내지 못하면 낙오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학원을 전전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공부법이다.”
-학교 수업의 질이 높다면 사교육이 번성하지 못할 텐데.
“나는 공교육 선생님들 실력이 정말 높다고 자부한다. 올해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지방 일반고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사교육 없이 학교 교사들이 만든 프로그램과 EBS를 활용한 수업으로 일궈낸 거였다. 문제는 교사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다. 간식 구매 영수증까지 챙겨야 하는 잡무에 쫓겨 수업 준비는 퇴근 후 집에 가서 해야 한다. 개선돼야 한다.”
-AI 시대에 교육 방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AI는 혁신적 도구일 뿐 교육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국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거짓 정보 넘치는 시대에 올바른 정보를 분별해 소통하려면 읽고 쓰고 묻고 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입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국어 수업을 한다면?
“문학 작품부터 신문 기사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주고 아이들이 원 없이 토론하게 해주고 싶다.”
-대형 학원의 스카우트 제의는 왜 거절하나.
“교사 연봉의 100배라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어서(웃음). 수업 시간 한눈파는 아이들에게 ‘내가 거금을 마다하고 너희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지금 딴짓을 해?’ 하며 혼낸다, 하하!”
-자녀들은 공부를 잘하나?
“받아쓰기 40점 맞아오면서 ‘우리 엄마는 국어 선생님이에요’ 자랑하는 녀석들이다(웃음).”
-직업병이 있을 것 같다.
“현수막이든, 화장실에 붙은 광고든 맞춤법 틀린 건 못 본다.”
-올해 수능을 망친 학생들에게.
“당장은 날개가 꺾인 듯 아프겠지만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너의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될 거야. ‘원피스’, ‘슬램덩크’ 주인공들의 공통점 알지? 맞아, 포기하지 않는 것!!!”
☞윤혜정
1980년 출생. 성균관대에서 교육학,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2004년 면목고 교사로 교단에 선 뒤, 덕수고를 거쳐 현재 강일고 교사로 재직 중이다. 2007년 EBSi 강사로 데뷔해 수능 국어를 강의하다, 2011년 자신이 집필한 교재 ‘개념의 나비효과’로 강의하면서 ‘EBS 일타’로 사랑받고 있다. EBS 언어영역 최우수 강사,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김윤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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