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정치해서는 안 될 성품과 도덕성을 가진 이들이 국회를 이끌고 정당을 대표한다. 그들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지가 경이로울 뿐, 정치가답게 정치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사태의 일면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정치를 이끄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지지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쿠데타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고 내란으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당심’이든 ‘민심’이든 지지 여론을 불러일으켜 선출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에 합당한 자질과 품성, 실력을 갖췄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민주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큰 지지 얻었다고 좋은 정치가 아냐
민주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부정교합, 지금 우리 정치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민주적 정당성의 요건으로서 누구보다 큰 지지를 받는 이들이 적대와 혐오를 키우는 정치를 한다. 민심·당심·국민주권·당원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의 정치가 더 분열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런데 이는 사태의 일면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정치를 이끄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지지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쿠데타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고 내란으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당심’이든 ‘민심’이든 지지 여론을 불러일으켜 선출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에 합당한 자질과 품성, 실력을 갖췄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민주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큰 지지 얻었다고 좋은 정치가 아냐
민주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부정교합, 지금 우리 정치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민주적 정당성의 요건으로서 누구보다 큰 지지를 받는 이들이 적대와 혐오를 키우는 정치를 한다. 민심·당심·국민주권·당원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의 정치가 더 분열적이고 파괴적이다.
그간 우리 주변에는 습관처럼 “더 민주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필자는 그런 주장의 상당 부분이 채워져 있다고 보는데, 대표적으로 정치가에게 정치를 맡길 수 없다며 시민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시민정치’나 ‘직접민주주의’로 불리는 이런 주장만큼 시민이나 국민을 헛되이 이상화하고, 정치가의 역할이나 중요성을 경시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신자유주의가 민영화와 민간화를 앞세워 정부의 공적 기능을 최소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정치론이나 직접민주주의론 역시 정치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주인-대리인 문제로 경제를 이해하는 것에서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쳤듯, 정치가를 시민이 아닌 특권집단이나 이기적 대리인으로 정의함으로써 정치가가 없는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인 양 착각하게 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세습이나 혈통의 원리가 아닌, 선출의 원리로 선발된 시민 대표에게만 통치를 허락하는 체제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가는 ‘제1 시민’이다. 시민이면서 동시에 일정 기간 시민의 대표로서 일하게 된 시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민은 ‘임기 없는 시민’과 ‘임기 있는 시민’으로 이루어진다. 정치가는 임기가 있는 시민이다. 임기 동안 야유받고 욕을 볼 때도 많지만, 그들의 수고 덕분에 보통의 시민 삶이 평화로운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가는 시민이 자신의 손으로 세운 자들이다. 그들을 통해 시민 사업을 운영하는 현명한 존재여야 시민의 역할도 잘할 수 있다.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시민이 직접 공적 결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인류는 서로 나눠서 일하며 협력의 가치를 배워왔다. 시민은 정치를 직접 하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기에 민주주의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공동체 평화 위하는 정치인 격려를
좋은 정치와 좋은 정치가를 통해 일하는 방법을 익혔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덕분에 노예와 여성에게는 권리를 주지 않았던 낡은 민주주의를 버리고, 만인의 평등한 권리 위에 대의민주주의를 세웠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과 정치가가 협력하는 체제다. 시민이 정치가 없이 스스로 직접 운영하는 체제가 아니다. 시민이 정치가를 없애고 대신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다.
영혼과 육체는 한 사람 속에 있지만 동시에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바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듯, 정치가와 시민도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정치도 건강해질 수 있고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영원히 정치가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존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정치가는 임시직이고 비정규직이다. 주기적으로 시민의 주권을 위임받아야 다시 일을 맡는 사람들이다. 정치가는 가장 불안정한 직업이기에, 우리는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보상을 주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이 정치에 권태를 느끼거나 돈이나 권력에 쉽게 좌절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이 혐오로 가득한 열정적 팬덤 정치에 유혹되지 않도록, 정치가로서 품위와 예의를 지키며 일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지지만 늘리면 승자가 되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나 팬덤 정치, 전체주의에 취약하다. 민주주의가 그 길로 가면 사회나 공동체가 분열되든 말든 권력 장악에만 열의를 가진 야심가가 득세한다. 정치가 대신 시민에게 직접 정치를 맡긴다 해서 정치가의 역할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대신 그 자리를 아첨꾼과 선동꾼으로 채우는 민주주의가 올 뿐이다. 새해에는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용기 있게 일하는 정치가들이 격려받았으면 한다. 좋은 정치가를 길러낼 수 없는 민주주의는 불행하다. 왜 그 길로 가야 하겠는가.
박상훈 정치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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