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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향해 가는…찰나의 예술, 그래서 더 눈부신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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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향해 가는…찰나의 예술, 그래서 더 눈부신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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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얼음조각 한길… 문성호 작가
부산광역시 초읍동의 한 작업장. 차가운 냉기가 얼굴을 스쳤다. 냉동고 문을 열자 투명한 얼음 블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성호(52) 얼음조각가는 오늘도 말없이 얼음 앞에 섰다. 몇 시간 뒤면 얼음조각은 형태를 잃고 녹아 사라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얼음을 깎는다.

전기톱을 사용해 형태만 남긴 후 떨어져 나온 쓸모없는 얼음조각들이 작업장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기톱을 사용해 형태만 남긴 후 떨어져 나온 쓸모없는 얼음조각들이 작업장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얼음조각은 원래 없어지는 예술입니다. 녹아야 얼음 조각이죠.”

30년 넘게 얼음조각을 해온 문성호 조각가는 생계를 위해 돈가스집을 운영하지만, 얼음조각을 놓지는 않았다.

문씨의 얼음조각 인생은 1986년 부산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시작됐다. 송년회와 대형 연회가 잦던 시절, 얼음조각은 행사장을 빛내는 ‘꽃’이었다. 처음 얼음이 칼끝에서 형태를 갖추는 순간을 본 기억이 여전히 또렷이 남아 있다.

“남들보다 좀 빨랐던 것 같아요. 손으로 만드는 게 좋았고, 남들이 안 가는 길에 더 끌렸죠.”

전기톱으로 얼음을 가르자 흰 가루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작업의 70~90%는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얼음은 돌처럼 단단하지만, 한 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금이 간다.

전기톱으로 얼음을 가르자 흰 가루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작업의 70~90%는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얼음은 돌처럼 단단하지만, 한 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금이 간다.


문성호(52) 얼음조각가가 부산 초읍동 작업장에서 얼음조각을 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미리 구상한 뒤 전기톱으로 절단하자 봉황 윤곽이 드러났다. 그 뒤로는 얼음조각을 위해 쓰이는 조각칼들이 벽면에 걸려 있다.

문성호(52) 얼음조각가가 부산 초읍동 작업장에서 얼음조각을 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미리 구상한 뒤 전기톱으로 절단하자 봉황 윤곽이 드러났다. 그 뒤로는 얼음조각을 위해 쓰이는 조각칼들이 벽면에 걸려 있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닻’ 형태의 얼음조각 작품을 완성한 뒤 조각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얼음조각은 부산의 한 선박업체에서 의뢰받은 작품이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닻’ 형태의 얼음조각 작품을 완성한 뒤 조각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얼음조각은 부산의 한 선박업체에서 의뢰받은 작품이다.


부산 초읍동 작업장에서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얼음조각에 열중하고 있다. 작업장에는 얼음조각에 쓰이는 원재료인 네모반듯한 얼음들이 놓여 있다.

부산 초읍동 작업장에서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얼음조각에 열중하고 있다. 작업장에는 얼음조각에 쓰이는 원재료인 네모반듯한 얼음들이 놓여 있다.


그렇게 시작한 얼음조각은 어느새 평생의 업이 됐다.


당시 얼음조각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선배에게 배우려고 해도 돌아오는 말은 “알아서 해보라”는 것이었다. 문씨는 컴퓨터 그래픽을 독학해 도안과 설계를 익혔고, 일본과 해외 자료를 뒤지며 밤낮없이 연구했다.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얼음조각은 예술이 아닌 ‘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수요가 많은 시절에는 하루에 얼음조각 30개씩 만들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벤트와 퍼포먼스, 겨울에는 송년회와 모임, 봄과 가을에는 결혼식이 이어졌다.

“기본은 한 작품에 한 시간입니다. 많이 하다 보면 10분 만에 하나씩도 나오죠.”

얼음조각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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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작업장 냉동창고에서 작업을 위해 얼음을 꺼내고 있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작업장 냉동창고에서 작업을 위해 얼음을 꺼내고 있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작업에 앞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작업에 앞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전기톱이 물러나면, 조각칼이 등장한다. 투명한 얼음 면 위에 수십 번의 칼질이 지나간 흔적이 남는다. 가까이서 보면 거칠지만, 멀리서 보면 빛을 반사하며 형태를 만든다. “얼음은 멀리서 봐야 합니다. 가까이 보면 다 흠집이에요.”

전기톱이 물러나면, 조각칼이 등장한다. 투명한 얼음 면 위에 수십 번의 칼질이 지나간 흔적이 남는다. 가까이서 보면 거칠지만, 멀리서 보면 빛을 반사하며 형태를 만든다. “얼음은 멀리서 봐야 합니다. 가까이 보면 다 흠집이에요.”


숙련의 속도는 곧 신체 부담으로 이어졌다. “빠른 게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몸이 먼저 망가집니다.”


대형 눈·얼음축제는 문씨에게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강원도와 영남 지역을 오가며 수백장의 얼음을 쌓아 높이 4m가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얼음조각을 통해) 축제를 키운 보람이 가장 컸다”는 말이 그 시절을 설명했다. 그러나 축제가 기획사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작품 규모는 줄고, 완성도도 떨어졌다.

“얼음조각은 이미 사양산업이 됐습니다.”

완성된 얼음조각 작품에 물을 뿌리고 있다. 작업할 때 나온 얼음가루들을 세척하기 위해서다.

완성된 얼음조각 작품에 물을 뿌리고 있다. 작업할 때 나온 얼음가루들을 세척하기 위해서다.


‘닻’ 모양의 얼음조각을 바닥에 눕혀 진행하고 있다. 모양과 대칭을 위해 때로는 이렇게 눕혀서 작업한다.

‘닻’ 모양의 얼음조각을 바닥에 눕혀 진행하고 있다. 모양과 대칭을 위해 때로는 이렇게 눕혀서 작업한다.


전기톱으로 얼음을 가르자 흰 가루가 뿜어져 나온다.

전기톱으로 얼음을 가르자 흰 가루가 뿜어져 나온다.


서울은 물론 부산에서도 호텔과 대형 행사에서 얼음조각을 찾는 일이 크게 줄었다.


한때 300평 규모의 아이스 갤러리 운영에도 참여했다.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냉동기와 전기료,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10년 가까이 이어진 전시는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이후 축제와 행사가 급감하면서 일감은 더욱 줄어들었다.

산업을 짓누르는 또 다른 요인은 원자재 가격이다. 과거 1만원이던 조각용 얼음은 지금 4~5배까지 올랐다. 조각용 큰 얼음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재료 수급도 불안정해졌다.

“재료는 비싸졌는데 작품값은 쉽게 못 올립니다. 7~8년째 가격이 그대로예요.”

작업장 한쪽 벽면에 가득 걸려 있는 얼음조각을 위한 작업도구들.

작업장 한쪽 벽면에 가득 걸려 있는 얼음조각을 위한 작업도구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얼음에 조각칼로 봉황 날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성호 얼음조각가가 얼음에 조각칼로 봉황 날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기톱으로 형태를 잘라내고 나면, 조각칼로 섬세한 부분을 표헌한다.

전기톱으로 형태를 잘라내고 나면, 조각칼로 섬세한 부분을 표헌한다.


운반비와 인건비, 장비 유지비까지 더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도 단골손님에게는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

얼음조각은 행사장에서 평균 3~4시간을 버틴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문성호는 얼음조각이 “어차피 녹는 것”으로만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과 시간이 들어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완성되는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가는 예술. 기록도, 보관도 쉽지 않다.

얼음 가루와 물, 전기톱에서 튄 얼음 파편이 바닥을 덮는다. 문성호 얼음조각가는 앞치마와 오렌지색 장화를 신고 그 위에 선다.

얼음 가루와 물, 전기톱에서 튄 얼음 파편이 바닥을 덮는다. 문성호 얼음조각가는 앞치마와 오렌지색 장화를 신고 그 위에 선다.


작업장 출입문에 예전에 만들었던 얼음조각 작품 사진들이 붙어 있다.

작업장 출입문에 예전에 만들었던 얼음조각 작품 사진들이 붙어 있다.


“다른 미술 작품은 남지만, 우리는 남는 게 없거든요.”

과거에는 배우겠다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수익이 안 나오니 누가 쉽게 들어오겠습니까.” 일부 학원과 학교에서 얼음조각을 가르치지만 “기초 수준에 그칩니다. 현장과는 다릅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문씨가 배운 방식은 단순했다.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실력 있는 선배를 찾아가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렇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배웠고, 다시 후배를 가르쳤다. 하지만 이마저도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문씨는 자신의 선택을 이렇게 돌아본다.

“돈을 보고 갔어야 했는데, 일만 보고 왔어요.”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병든 몸과 줄어든 일감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얼음을 꺼내 칼을 든다.

“이 일을 안 하면 내가 아닌 것 같거든요.”

얼음은 녹아 사라진다. 그러나 문씨가 30년 동안 쌓아온 시간과 손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차가운 작업장 안에서, 그의 하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산=사진·글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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