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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지식인-엘리트의 전유물인가…읽고 쓰던 노동자들 있었다[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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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지식인-엘리트의 전유물인가…읽고 쓰던 노동자들 있었다[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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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부문]
'문학의 민주주의' 장성규


장성규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부문을 수상한 자신의 세 번째 연구서 '문학의 민주주의'를 들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장성규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부문을 수상한 자신의 세 번째 연구서 '문학의 민주주의'를 들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제가 한 거라고는 1980년대 후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이 쓴 글들을 이곳저곳에서 모아 정리하고 소개한 것뿐인데요.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빛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분들이 한 작업 때문일 것이고, 반대로 그들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제 몫입니다."

구로노동자문학회소사(小史)라는 부제를 단 책 '문학의 민주주의'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부문을 수상한 장성규(47)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연신 "상 받을 책이 아닌데요"라며 손사래 쳤다. 이 책은 기존 문학 연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구로노동자문학회(1988~2006)를 중심으로 "노동자 글쓰기의 문학사를 거칠게나마 조망해보려는 조그마한 시도"의 소산.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그의 세 번째 연구서다.

책은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일컬어지는 이광수의 '무정' 속 문제적 인물 '형식'에 주목하는 데서 출발한다. 장 교수는 "한국 문학을 말할 때 흔히 남성 지식인의 계몽적 주체성을 떠올리게 된다"며 "형식이 문학사에서 중시되는 이유 역시 국문은 물론 일문, 영문까지 읽고 쓸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읽고 쓸 수 없는 대부분의 노동자를 포함한 비문해자들은 문학 장에서 어떻게 존재했는가,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지식인 엘리트 집단으로 문학의 주체를 상정하는 게 타당한가,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수많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문학사'를 다시 논하고자 한 동기다.

장성규 교수는 책은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던 여러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결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시주, 조기조, 송경동, 황규관, 김사이, 이영신 선생의 이름은 꼭 밝히고 싶다고 했다. 임지훈 인턴기자

장성규 교수는 책은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던 여러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결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시주, 조기조, 송경동, 황규관, 김사이, 이영신 선생의 이름은 꼭 밝히고 싶다고 했다. 임지훈 인턴기자


그는 "지금 노동문학을 다시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당시 노동자 글쓰기 역시 객관적인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지식인 작가 몇몇의 문제적 작품 위주보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이뤄진 노동자 글쓰기를 새롭게 조망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2000년대 이후 현장에서의 글쓰기 역시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면에서 풍문으로 남은 구로노동자문학회는 더없이 맞춤한 연구 대상이었다. 텍스트의 창작과 유통, 향유까지 '문학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실재했음을 보여주는, 문학사에 이례적인 사례이기 때문. 장 교수는 2022년부터 유시주, 조기조, 송경동, 황규관, 김사이, 이영신 등 구로노동자문학회의 주요 구성원을 인터뷰하고, 문집, 소식지, 회보, 자료집 등 비공식 간행 자료를 수집했다. 이로써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구로노동자문학회 실상을 최초로 복원해냈다. 이번 책의 가장 큰 성과다.

물론 후속 연구로 보완할 지점도 남아 있다. 구로노동자문학회와 같은 시기 활발했던 다양한 지역의 노동자문학회 활동, 1990년대 중후반 발간된 노동자 문집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흔히 서벌턴(하위 주체)으로 불려온 이들이 어떤 사유를 했고,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를 본격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을 앞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