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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김수미의 'K-씨어터'…실천하는 예술 교육자, 남인우 연출-③

연합뉴스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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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김수미의 'K-씨어터'…실천하는 예술 교육자, 남인우 연출-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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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남인우 연출과 이자람 음악 감독[연합뉴스 자료 사진]

남인우 연출과 이자람 음악 감독
[연합뉴스 자료 사진]



남인우의 작업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 평택 미군 기지 앞에서 보낸 거친 청소년기는 전통과 현대가 뒤엉킨 풍경으로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남인우는 이를 '보존해야 할 전통'과 '깨뜨려야 할 현대'로 나누지 않는다. 보고 느끼며 경험한 현실 그대로를 본인의 작품 세계 안에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저는 꽤 험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평택이 고향인데, 집이 미군 부대 앞에 있었거든요. 제가 나온 중학교는 졸업할 즈음엔 한 반이 거의 사라져요. 자퇴하거나 중퇴하는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아이들이 환각제를 먹거나 본드를 마셔서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면, 선생님이 잡아 오라고 해서 찾아다니는 일도 다반사였어요. 그런 일이 너무 일상이 되면 덤덤해져요.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넓은 들과 평야가 펼쳐지는데, 우리 집 2층에 살던 한국 여자는 같이 사는 미군에게 매일 맞고 살았죠. 저는 세상이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제 기억과 경험 속에는 미군 기지 앞의 환락가 풍경과 논밭의 평온한 풍경, 엿장수의 음악과 미군 재즈클럽의 재즈가 뒤섞여 있어요. 전통과 현대, 보존과 해체에 특별히 거창한 의미를 두고 작업한 게 아녜요. 그저 그것들이 경계 없이 뒤섞인 것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였던 거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한 남인우는 2012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국립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가 연출한 청소년극 '소년이 그랬다'(2011)는 국립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첫 작품이었다.

남인우가 사전 제작 단계에서 4개월 동안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한 워크숍과 리서치는 작품의 단단한 골격을 세워주었다. 청소년 특유의 언어와 관계 맺기 방식이 그들의 일탈과 충동 속에 드러나면서 청소년기를 지낸 어른 관객들에게도 크고 작은 질문을 던져줬다.

연구소가 10주년을 맞은 2021년, 이 작품은 다시 한번 그 의미와 가치를 조명받았다. '소년이 그랬다'는 청소년이 경험하는 폭력적인 세계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청소년이 스스로 선택한 과정과 결과를 응시하게 했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어른을 더 아프게 채찍질했다.


최근 공연된 청소년극 '실종: 그레텔을 찾아서'(종로아이들극장, 11월 21~29일)에서도 남인우는 스스로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일어서려는 청소년 헨젤에게 주목했다.

남인우의 청소년극 공연 관객은 아이보다 어른이 훨씬 많다. 작품의 시작점은 청소년의 입을 통해서이지만, 결국 그 말을 듣고 변화해야 하는 주체는 어른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제게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전 지금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죠. 성장 과정에서 아이들이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경쟁 속에서 서열을 배우고, 패배의 혹독한 경험을 몸으로 익힌 아이들에게 실수와 실패가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남인우는 교육이 예술을 바탕으로 하고, 아이들이 예술을 감각적 경험으로 기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가능성이 열린다고 믿는다.

"제가 하는 연극 무대는 예술교육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예술교육이 창작 과정과 비슷하거든요. 예술교육이라는 건 관객과 예술의 구분 없이 순간적으로 촉발되는 예술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제 창작의 근본은 예술교육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어요. 적어도 제게는 예술교육과 연극 창작이 서로 순환하면서 영향을 줍니다. '가믄장아기'도 아이들과 교감하면서 나왔던 아이디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여성 서사에 관한 관심이다.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만든 브레히트 시리즈 '사천가'(2007) '억척가'(2011)는 공연계에서 남인우의 이름을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창작 지평을 확장했다.


영국 퀸스엘리자베스 홀의 '사천가' 공연 객석[극단 북새통 제공]

영국 퀸스엘리자베스 홀의 '사천가' 공연 객석
[극단 북새통 제공]



"우연한 기회에 이자람 씨에게 판소리를 배우게 됐는데, 소리를 하다가 눈앞에 풍경이 그려지는 황홀한 경험을 했어요. 청각적 감각이 시각적 감각을 확장되는 상상과 변형의 경험이었다고 할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작품까지 만들게 된 거죠."

남인우와 이자람은 브레히트의 '사천에 사는 착한 선인'을 현대적인 이야기로 바꿔서 판소리 '사천가'(2007)를 만들었다. 타악 중심의 리듬 악기만을 사용해 세계의 다양한 리듬을 교차시킨 이 독특한 판소리 공연은, 국내는 물론 해외 페스티벌에서 더욱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천가'를 공연하는 이자람[극단 북새통 제공]

'사천가'를 공연하는 이자람
[극단 북새통 제공]



브레히트의 두 번째 작품으로 LG아트센터가 제작 의뢰해서 만들어진 '억척가'(2011)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 원작이다. 자식을 잃고 절망하는 어머니의 비극적 서사를 '그런데도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에 초점을 두고 새롭게 재구성했다.

"'사천가'는 연주자들에게 개런티도 없이 담배 한 갑씩 사주고 부탁한 거라서 750만 원으로 시작했던 작품이었어요. 그에 비하면 LG아트센터의 '억척가'는 제작 환경이 좋았죠. 덕분에 바닥에 우퍼까지 심을 수 있었어요. 소리의 진동이 관객의 몸으로 직접 들어가게 해서, 청각을 온몸의 감각으로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사천가'를 3∼4년 공연하다가 2011년에 '억척가'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도 2015년까지 해외 투어를 했어요."

비주류로 밀려나 있던 여성 서사를 무대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그가 청소년과 신경다양성 장애아를 대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문제를 무대의 한복판으로 가져와 그들의 언어와 몸짓을 통해 감각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들에게 시선을 맞춰 말을 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억척가 공연 [극단 북새통 제공]

억척가 공연
[극단 북새통 제공]



예술교육에 대한 그의 다양한 문제의식은 개인 차원의 예술 작업을 넘어서 제도와 정책의 변화와 수립을 향해 있다. 미국 링컨센터 예술교육이 맥신 그린의 철학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변형을 핵심에 두고 일관된 정책을 펼치고 있는 환경이 남인우에게는 가볍게 넘겨봐 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예술교육의 정책적인 방향이 일관된 흐름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교육철학자인 곽덕주 교수님이 예술교육의 핵심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교사와 참여자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게 바로 동양 철학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걸 양자 역학이라고 생각했어요. 즉흥은 결국 기(氣, 에너지)를 교환하는 거잖아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개념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에서는 이걸 서양 외국 교수에게 배우고 있어요.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이야기한 해방교육과 지적 평등도 같은 맥락이죠. 우리 사회에서 예술교육은 너무 중요하고 시급한데, 뚜렷한 철학을 세우기보다 비슷한 시도만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의 예술교육 진흥을 위해서 일할 기회가 온다면, 저는 가장 먼저 한국 예술교육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고 싶어요. 링컨센터처럼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를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예술의 지원 정책도 신뢰를 전제로 기획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 현장의 기관과 행정은 예술을 관리의 언어로 해석하고, 예술가를 신뢰의 주체가 아닌 감시의 대상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통제 중심의 행정은 공익과 공정의 이름 아래에서 실상은 예술가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예술 지원 제도는 '증빙'의 굴레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 원짜리 영수증 한 장까지도 엄격한 잣대로 규제하는 행정에서는 공정성이 남겠지만, 예술의 본질적 특성과 창작의 자유는 종종 간과되기 마련이다. 예술은 계획된 결과물이 아니라 실험과 탐구의 과정이며, 그 속성상 일정 부분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불신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실현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신뢰의 눈으로 예술을 바라볼 수 있어야 공공의 문화와 행정이 함께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덴마크에서 예술 기금을 받는 예술가들은 증빙이 없어요. 그냥 공연 사진만 찍어 보내죠. 어느 관료에게 들은 얘긴데, 10~20%는 어차피 로스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10~20%를 막겠다고 감시하고 검사하는 데 행정 비용을 쓰는 것보다, 그만큼 손해 보는 편이 낫다는 거죠. 사회적 신뢰를 바탕에 둔 과정인 거예요.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로 행정 절차가 만들어져 있잖아요."

남인우가 연극과 예술교육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예술과 교육, 청소년과 장애 아동, 로컬리티와 글로벌 사이를 끝없이 가로지른다.

그가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현장과 정책을 고민하며 묵묵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而生其心, 금강경에 나오는 말로 마땅히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말고, 청정한 마음과 자비심을 내라는 뜻)을 생각하게 된다.

고집스럽게 집착하지 않고 인연에 순응해 걸림 없이, 한 군데 머무는 바 없이, 어디에서도 진정한 마음을 내는 사람. 예술가이자 교육가이며, 연출가이자 연구자이기도 한 남인우의 행보가 지나온 30년보다 앞으로의 30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선연(禪蓮) 김수미. 연극 평론가

▲ 전 월간 '객석' 연극전문 기자. 현 중랑문화재단 문화정책사업팀장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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