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로에 선 환자 '후순위'
건보 재정 지속 가능성도 흔들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인상과 매력을 좌우한다. 흔히 '머리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같은 얼굴이라도 머리 모양에 따라 더 젊어 보이기도, 더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한다. 탈모 증상이 심한 사람들이 가발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탈모는 분명 개인의 삶의 질과 자존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검토를 지시한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탈모를 단순한 미용 영역이 아닌 공적 보건 문제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발언을 기점으로 탈모 치료제 급여화를 둘러싼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한 축은 형평성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매달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정작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가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탈모는 20~30대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연령대에서 건강보험을 '돈만 내는 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건보 재정 지속 가능성도 흔들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인상과 매력을 좌우한다. 흔히 '머리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같은 얼굴이라도 머리 모양에 따라 더 젊어 보이기도, 더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한다. 탈모 증상이 심한 사람들이 가발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탈모는 분명 개인의 삶의 질과 자존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검토를 지시한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탈모를 단순한 미용 영역이 아닌 공적 보건 문제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발언을 기점으로 탈모 치료제 급여화를 둘러싼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한 축은 형평성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매달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정작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가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탈모는 20~30대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연령대에서 건강보험을 '돈만 내는 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 논리는 곧바로 반론에 부딪힌다. 탈모 치료제가 젊은 층 모두에게 열려 있는 혜택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대표적인 탈모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는 부작용 문제로 여성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같은 보험료를 내는 젊은 여성 다수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가 이뤄지더라도 직접적인 혜택을 받기 어렵다. 급여화가 오히려 새로운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는 표현도 논쟁거리다. 탈모가 당사자에게는 분명 심각한 고민일 수 있지만, 의료 정책의 관점에서 생존의 문제로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는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으면서도 치료비 부담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존재한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희귀·난치성 질환의 고가 약제 앞에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 희귀의약품의 건강보험 지출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3700억원으로 전체 약품비의 2.1%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탈모 치료제 급여화가 과연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에 맞는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탈모를 '생존'으로 규정할 경우,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해 고가 비용으로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들은 제도 밖에서 다시 한 번 삶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와 관련해 대한의사협회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기보다는 중증 질환 급여화를 우선 추진하는 것이 건강보험 원칙에 부합한다"고 제언했다.
건강보험 재정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병적인 탈모로 분류되는 원형 탈모증 등 치료가 가능한 일부 중증 사례는 이미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돼 있다. 반면 유전성 탈모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고 복용하는 동안 탈모 진행을 늦추거나 개선해준다. 효과 유지를 위해 장기간, 경우에 따라 평생 복용이 전제되는 만큼 누적되는 재정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특히 탈모 치료제의 급여 적용시 환자 접근성이 높아져 매출 확대가 기대되는 제약사들마저 반응이 시원치않다. 제네릭(복제의약품) 약가를 낮추는 약가제도 개선안으로 제약산업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규정한 정책 메시지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발생한 고액의 진료비로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평소에 보험료를 나누어 내고, 위급한 순간에 적정한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제도의 근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탈모 치료제 급여화가 이 제도의 본래 취지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문제다.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끌어올린 정책 메시지가 건강보험이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진짜 생존'을 후순위로 내몬다면,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물론 공적 의료 체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마저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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