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중앙일보 언론사 이미지

'구조조정'·'정리해고' 반대 파업 가능…노란봉투법 지침도 논란

중앙일보 김연주
원문보기

'구조조정'·'정리해고' 반대 파업 가능…노란봉투법 지침도 논란

서울맑음 / -3.9 °
민주노총, 진보당 등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진보당 등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내년 3월부터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휴일이나 작업 물량 등에서 '구조적으로 통제'할 경우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 노조법상 '진짜 사용자'에 해당한다. 또 그동안 쟁의행위 대상에서 제외돼 왔던 '정리해고' 와 '구조조정' 역시 교섭 대상으로 포함된다

고용노동부는 시행을 100일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ㆍ3조 개정안)’ 해석지침을 26일 행정 예고했다.

노란봉투법은 교섭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교섭 대상인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누구를 사용자로 볼 것인지, 어디까지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법에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사용자와 쟁의 대상의 범위에 대해 40쪽짜리 해석지침을 내놓았다. 해당 지침은 법 시행 이후 노동위원회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원청 사업주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하청이 휴일 결정 못 하면 원청이 사용자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노란봉투법은 ‘실질적ㆍ구체적 지배력’을 가진 경우 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청 사용자도 교섭 당사자인 이른바 ‘진짜 사용자’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러한 실질적 지배력을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보유한 주체로 보되, 원청 사업에의 편입 여부와 경제적 종속성 등을 보완적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노동부가 제시한 구조적 통제의 대표적 사례는 계약을 통해 하청의 영업 일수나 운영 방식을 사실상 결정하는 경우다. 계약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해지가 가능해 하청이나 근로자가 근무 조건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쉽게 말해 휴일을 하청이 스스로 정할 수 없다면, 해당 사안에 대해 원청 사용자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또 하청 근로자의 작업 시간이 작업 물량이나 원청이 관리하는 물류 차량, 설비, 지원 인력 투입 규모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구조적 통제에 해당하는 사례로 제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다시 ‘구조적 통제’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 만큼, 현장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정부로서는 판례와 중노위 판단을 정리해 제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현장의 혼란은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리해고ㆍ정규직 전환 요구도 파업 가능, 해외 공장 신설은 안 돼



노란봉투법의 또 다른 쟁점은 노동쟁의 대상 범위의 확대다. 그동안 정리해고 등 ‘사업상의 결정’은 경영권으로 인정돼 쟁의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법 통과로 ‘근로조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까지 포함하게 됐다.

지침은 합병ㆍ분할ㆍ양도ㆍ매각 등 기업 조직 변동을 위한 경영상 결정 자체는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자 지위나 근로조건에 실질적ㆍ구체적 변동이 발생할 경우에는 쟁의 대상이 된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 도입이나 정년 연장 기준 설정에 대한 요구까지도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교섭대상이 된 건 향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경영계가 우려해 온 해외 공장 건설처럼 향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당장의 변동이 없다면 이를 이유로 파업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해석지침에서도 근로조건에 대한 영향이 추상적이거나 잠재적인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노동쟁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노사 모두 반발… 향후 법원에서 뒤집힐 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의 문제의식을 균형 있게 반영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사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경영계는 해석지침에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 ‘계약 미준수 시 도급ㆍ위수탁 계약 해지 가능 여부’를 들고 있는데, 일반적인 계약 불이행에 따른 계약 해지까지 구조적 통제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병이나 매각처럼 기업 생존을 위한 경영 판단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한정한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준이 불분명해 판단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계는 반대로 가이드라인이 책임을 축소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측은 “불법파견 판단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로 활용될 우려가 더 크다”고 반발했다.

더 큰 문제는 노동부의 이번 판단이 향후 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노사 모두 가이드라인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큰 만큼, 법원이 다른 해석을 내릴 경우 현장의 혼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 개정이 아닌 행정 해석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

‘졸속 입법’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준희 광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법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한 상태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됐다”며 “사실상 입법 단계에서 비롯된 문제로, 정부가 추가로 손쓸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현대제철과 한와오션의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쟁의에 나설 수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오면서 경영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들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에 응하라는 조정 사건에서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청노조는 정당한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경총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며 “중노위는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 단위 분리를 1차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인 만큼, 이번 결정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낳아 기업들의 수용성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