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
주요 건설사가 연달아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내년에는 아파트 선분양이 장기간 금지되는 건설사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부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에 대해 최장 2년 동안 아파트 선분양을 금지한다. 영업정지를 받은 건설사는 영업정지 후 계약금, 중도금 등을 받지 못하고 건설사가 자체 조달한 자금으로 집을 지으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대형 건설사 중에 이런 규제 대상이 된 곳은 없었지만 최근 공사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도 늘어나 내년에는 이런 제재를 적용받는 건설사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26일 국토교통부와 건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건설사의 영업정지에 따른 선분양 제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택법과 이 법에 따른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사업 주체(시행사, 정비사업 조합 등) 또는 시공자(건설사)가 주택법 또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을 받거나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벌점을 받으면 선분양 제한 대상이 된다고 정해놨다.
구체적으로는 6개월 이상 영업정지를 받으면 영업정지가 끝난 시점부터 2년간 선분양이 금지된다. 이에 따라 입주자모집은 사용검사 후에 해야 한다. 또 영업정지 기간이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이면 영업정지 후 1년간 골조공사의 3분의 2를 마친 후 입주자를 모집해야 한다. 1개월 초과 3개월 미만의 영업정지를 받으면 6개월간 골조공사의 절반을 마친 후 분양해야 하고, 1개월 이하의 영업정지를 받으면 이후 3개월간 골조공사의 3분의 1을 마친 후 입주자를 모집해야 한다.
이 규정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부실시공으로 판명나 영업정지를 받은 건설사에 적용되는 규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이를 공사현장에서 사망자 1명 이상, 3개월 이상 요양 부상자 2명 이상, 10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 발생 등 중대재해에도 적용하기로 하고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부 건설사가 영업정지를 받았지만,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불복 소송을 통해 대응해 실제 이런 규제를 적용받은 사례가 없었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 건설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어 내년에는 선분양이 금지되는 첫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1시 22분쯤 서울 여의도 신안산선 복선전철 지하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소방대원과 경찰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최소 2명이 다쳤으며 소방 당국은 장비 23대와 인력 88명을 동원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 뉴스1 |
선분양이 금지되면 주택을 건설할 초기 자금 공급이 막힌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금과 중도금 등 중간에 들어오는 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해 아파트를 짓는 것이 대부분 공사 현장의 관행이다”라며 “선분양이 금지되면 모든 공사비를 건설사가 자체 조달해야 하고, 자체 조달을 위한 금융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건설사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선분양 금지 조치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곳은 중대형 건설사다. 지난 18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 2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된 한신공영이 대표적이다. 한신공영은 2019년 6월 부산 기장군 일광지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도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한신공영은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이를 받아들여 행정처분은 확정됐다. 정부가 영업정지에 따른 선분양 제한을 그대로 적용하면 1개월이 넘는 영업정지를 받은 한신공영은 2월 17일부터 6개월간 골조 공사의 절반을 마친 후 분양해야 한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에서 선분양 제한에 대한 통보를 받은 것은 없다”고 했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행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는 다른 건설사도 선분양 금지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주요 건설사를 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2021년 광주 학동 철거 붕괴와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로 각각 8개월, 1년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GS건설은 2023년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로 국토부로부터 8개월, 서울시로부터 2개월을 각각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현재 불복소송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계룡건설(각 6개월), 대우건설(2개월)도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상태다.
또 올해 다수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구조물 붕괴로 사상자 10명이 발생한 현대엔지니어링도 행정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들은 “아직 제재가 언제 확정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라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영업정지 이후에도 후분양을 막는 것은 건설사의 금융 비용 증가로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정부도 규제 완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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