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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방위 산업의 실리콘밸리가 되었나

조선비즈 류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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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방위 산업의 실리콘밸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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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일, 그날 밤의 작전은 대담하고 기만적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민간 화물로 위장한 트럭들을 러시아 영토에 깊숙이 침투시켰다. 목표점은 러시아 공군 기지 5곳. 작전명은 ‘거미줄 작전(Operation Spiderweb)’.

이날 우크라이나군은 트럭 안에 숨겨둔 소형 드론을 원격 조정으로 사출했다. 이 드론들은 수천억 원짜리 러시아 전략 폭격기를 향해 돌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군 기지 타격에 성공, 70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50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수백만 원짜리 드론으로 러시아군의 심장부를 흔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25년 6월 1일 거미줄 작전(Operation Spiderweb)으로 러시아 전략 폭격기(Tu-95) 등 다수 항공기를 FPV 드론으로 타격했다. 러시아 측의 피해는 위성사진·드론 영상으로 피해가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SBU

우크라이나는 2025년 6월 1일 거미줄 작전(Operation Spiderweb)으로 러시아 전략 폭격기(Tu-95) 등 다수 항공기를 FPV 드론으로 타격했다. 러시아 측의 피해는 위성사진·드론 영상으로 피해가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SBU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제1차 드론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드론과 소프트웨어는 탱크와 폭격기의 위상을 끌어내렸고 전장은 기술 경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전쟁이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는 역설은 우크라이나 방위 분야 스타트업에 뭉칫돈이 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4년이나 지속된 전쟁의 비극 속에 우크라이나는 ‘방위 산업의 실리콘밸리’라는 새 별칭을 얻었다.

심임보 재스위스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S) 명예회장(전 로잔연방공대 교수, 전 동아대 기계공학과 교수)은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통해 비용 대비 극도의 효율성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30년 이상 유럽의 IT 아웃소싱 기지로서 탄탄한 소프트웨어 실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라면서 “한국 전자·기계 산업 분야의 소프트웨어 역량(알고리즘과 머신 러닝 등)은 피지컬AI부터 국방AI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절대 열세 속 전략 병기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정면 대결로는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 공중 무인 전력(드론)에 국가 자원을 집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간 IT 기업은 물론 게임과 메이커 커뮤니티까지 끌어들였고 수백 개 드론 스타트업과 자원봉사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2025년 10월 30일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 근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제3군단 요격부대(SQUADRON) 소속 병사가 우크라이나 드론 요격기 스팅을 시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2025년 10월 30일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 근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제3군단 요격부대(SQUADRON) 소속 병사가 우크라이나 드론 요격기 스팅을 시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의 드론 제조 기술은 상용 드론을 개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드론은 ‘전략 병기’가 되었다.

취미용 소형 드론에 비디오 카메라와 폭발물을 장착한 1인칭 시점 드론(FPV)은 ‘자폭 드론’으로 불리며 위력을 떨쳤다. 또 수백~수천㎞급 장거리 드론, 해상 드론과 수중 드론이 속속 개발돼 러시아 흑해 함대와 잠수함을 공격했다.

2023년, 우크라이나는 모든 여단에 무인 항공기 중대를 포함시켰고 2024년엔 세계 최초로 드론 운용과 전술 개발을 전담하는 조직 ‘무인체계군(Unmanned Systems Forces, USF)’도 창설했다.


2025년 11월, 올렉산드르 시르시키 우크라이나 최고사령관은 “러시아에 대한 공격의 약 60%에 드론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2025년 전황은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약 750마일(약 1200㎞)에 달하는 전선 들판에는 광섬유 케이블이 깔려 있고 드론은 개별 병사를 사냥하듯 쫓아다닌다.

이제 탱크를 이동시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해졌다. 수백 달러짜리 드론 하나가 수백만 달러짜리 탱크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19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최전방 마을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도로 위에 드론 방지망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2025년 9월 19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최전방 마을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도로 위에 드론 방지망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유럽 코딩 공장의 전시 경제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코딩 공장’으로 불렸다. 2021년 기준 28만~30만명의 고숙련 IT 인력이 활동하며, 서방 기업의 복잡한 아웃소싱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던 점은 우크라이나가 드론 제조 기술을 빠르게 고도화한 비결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기존 IT 기업들도 전시(戰時) 체제에 맞춘 제품을 속속 내놓았다. 소프트서브(SoftServe)는 구급차 개조와 사이버 방어를 지원했고, 맥포(MacPaw)는 보안 앱을 배포했으며, 일렉스(Eleks)는 국방부 의료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에이작스시스템(Ajax Systems)은 공습 경보 앱을 개발해 국민의 생명줄 역할을 했다.

전통적인 방산 개발이 수년 단위 ‘워터폴(폭포수처럼 단계적으로 진행)’ 방식이었다면, 우크라이나는 수주 단위 ‘애자일(짧은 주기로 제품을 개발하고 피드백을 받아 보완)’ 방식으로 전환했다.

2023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방에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혁신 기업을 모으기 위해 ‘브레이브1(Brave1)‘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 플랫폼은 유망한 국방 기술 프로젝트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고 군 부대와 제조업체를 연결하는 온라인 조달 기능도 갖췄다.

‘불완전해도 쓸 수 있으면 쓴다’는 실용주의가 무기 인증 절차를 수주 단위로 단축했다. 고가의 군용 규격 대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상용 부품을 조합해 비용을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2025년 기준 브레이브1에는 2000팀 이상이 등록돼 있으며, 수백 개 솔루션이 이미 전선에서 검증됐다. 기술 종류도 드론, 지상 로봇, 전자전, 사이버 보안, 미사일 개발 등으로 확대됐다.

주(週) 단위 혁신 구조

스타트업, 전선의 부대, 정부가 실시간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자, 전자전 대응, 자율 비행, 스웜(군집) 기능이 수주~수개월 내 실전에 반영됐다.

최전선 병사들이 메신저로 버그와 개선점을 전달하면 개발자들은 며칠 만에 업데이트를 배포한다. 언론에 공개된 드론 생산 시설에서는 3D 프린터가 24시간 가동됐고 엔지니어들은 현장에서 소프트웨어를 즉각 수정했다. 새로운 탑재체는 며칠 만에 시험 비행을 거쳤다.

우크라이나의 4년 차 드론 스타트업 TAF인더스트리즈의 올렉산드르 야코벤코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참호 속의 운용 장병과 회사 실험실의 엔지니어가 직접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전선의 장병은 전자전에서 왜 실패했고,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어떤 공격이 성공했고 또 어떤 시도가 실패했는지 알려주고, 회사는 그 피드백을 즉시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2024년에만 FPV 37만대를 최전선 부대에 보냈다.

[Interview] 드론을 전장의 게임 체인저로 만든 청년 기업가 올렉산드르 야코벤코 TAF인더스트리즈 CEO

이 과정에서 민간 기술이 국방으로 빠르게 이전되는 ‘민군(民軍) 융합’이 가속화됐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는 외국 군수 기업의 신무기를 최전선에서 시험하는 계획-‘우크라이나에서 시험하세요’도 내놓았다. 기업들이 신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면 우크라이나군이 해당 제품을 사용하고 기업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식이다.

2024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에서 100만대 이상의 FPV를 포함해 모든 유형의 드론 약 220만대가 생산됐다. 2025년 생산 목표는 400만대에 달했다. 이는 유럽 전체 드론 생산량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우크라이나 드론 산업의 약점은 ‘공급망 리스크’다. 모터, 배터리, 통신 모듈 등 핵심 부품 상당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생산 능력 자체는 확대됐지만, 부품 수급 차질이 곧바로 양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뭉칫돈 몰린다

모스크바와 러시아 후방 공군 기지, 흑해 함대 기지까지 타격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작전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서방의 시선이 우크라이나 방위 산업으로 쏠렸다. 우크라이나에 ‘드론 슈퍼파워’, ‘방위 산업의 실리콘밸리’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방위 스타트업에 대한 자본 유입이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위 스타트업이 전시 보조금과 기부에 의존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자본 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신호다.

브레이브(Brave1)의 예비 수치에 따르면, 2025년 우크라이나의 방위 기술 스타트업 50여 곳이 벤처 투자와 엔젤 투자를 합쳐 1억 5백만 달러 이상을 확보했다.

스워머(Swarmer, 1500만달러), 텐코어(Tencore, 374만달러), 드롭라(Dropla, 275만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유럽의 방산 스타트업들이 총 2억달러 상당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 스타트업들이 차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5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제3회 국제방산포럼에는 20개국 이상에서 약 2000명의 참가자가 모였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우크라이나 및 해외의 민간 방위·기술 기업과 협회 약 900곳, 정부 기관 120곳, 국방부 50곳, 각국 대사관 및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5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제3회 국제방산포럼에는 20개국 이상에서 약 2000명의 참가자가 모였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우크라이나 및 해외의 민간 방위·기술 기업과 협회 약 900곳, 정부 기관 120곳, 국방부 50곳, 각국 대사관 및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여했다.



미국의 MITS캐피털, 그린플래그벤처스(Green Flag Ventures) 등은 우크라이나에 현지 거점을 마련하고 투자를 확대했다. 구글 전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가 D3 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 드론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졌다.

독일의 라인메탈(Rheinmetall)은 2024년 우크라이나 국영 방산 기업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 공장 4곳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해외 장비를 신속하게 수리해 전선에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향후 장갑차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튀르키예의 베이카르(Baykar)는 키이우 인근에 대규모 드론 공장을 지었다. 베이카르는 기체 제조 기술을 제공하고 우크라이나는 자국 항공 엔진 기술을 공급한다.

미국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은 중구경 탄약 공동 생산 협정을 체결했고, 프랑스·독일 합작사 KNDS는 ‘KNDS 우크라이나’를 설립했다.

안나 그보즈디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KIEF(Kyiv International Economic Forum)2025에서 “우크라이나는 세계 방위 산업 변혁의 원동력으로 부상했다”면서 “소규모 제조업체도 전선에서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경험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부터 국제방산포럼(International Defense Industries Forum)도 열어 방위 기술을 홍보하고 있다. 올해 포럼엔 20여 국가에서 2000여 명이 참가했다.

유럽 싱크탱크인 브뤼헐(Bruegel)은 보고서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전후(戰後) ‘유럽의 무기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렴한 생산 비용, 숙련된 기술 인력, 그리고 실전에서 축적된 방대한 전투 데이터 때문이다.

광케이블 기반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적용한 HCX 무인항공기/ HIGHCAT

광케이블 기반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적용한 HCX 무인항공기/ HIGHCAT



+Plus Point

우크라이나는 현대전의 교과서를 새로 썼지만, 국가 재정은 사실상 한계선에 다가섰다. 전쟁이 4년째로 접어들었고 미국의 재정 지원이 대부분 끊겼기 때문이다.

12월 19일, 유럽연합(EU)은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총 900억유로(약 156조원) 규모의 무이자 대출 제공에 합의했다. 우크라이나의 재정 위기를 계속 방치할 경우 러시아의 위협이 유럽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25년 12월 23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인들과의 회동 장면/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연합

2025년 12월 23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인들과의 회동 장면/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연합



최근 러시아의 드론 반격도 만만치 않다. 야간에는 수십~수백 대의 드론을 동시에 투입해 우크라이나 방공 레이더를 소진시키는 전술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올 들어 재밍(전파 교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광케이블 드론을 대량 투입, 우크라이나의 보급로와 후방 차량, 장갑차를 낮은 고도에서 정밀 타격했다. 이 드론은 비행과 동시에 얇은 광섬유 케이블이 풀려나가 조종기와 물리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

미국은 종전을 위한 협상을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진행 중이다. 12월 24일, 우크라이나는 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을 동결하고 비무장지대(DMZ) 설치 협상을 개시한다는 종전안을 미국과 논의했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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