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가벼운 청년, 면허도 포기
25일 오전 11시 50분쯤 방문한 서울 서초구 사당자동차운전전문학원 접수 대기실의 모습. 경제 불황으로 운전 면허 취득을 하지 않는 10~30대 젊은층이 늘면서 운전면허 학원도 한산한 모습이다./윤성우 기자 |
2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의 한 운전면허 시험장. 약 50평 남짓한 접수 대기실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좌석 28개가 텅 비어 있었다. 15분에 한 명꼴로 드문드문 면허 시험 응시자가 들어왔다. 접수처 직원 3명은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서 20년째 근무 중이라는 노모(47)씨는 “예년 크리스마스 때는 수능을 치른 고등학생들이 대거 시험장을 찾았는데 요즘은 면허를 따려는 친구가 별로 없다”고 했다. 건물 밖 주행장에는 트럭 한대만 운행 중이었다.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젊은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경찰청의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 통계를 보면, 운전면허를 새로 딴 10·20대는 올해 1~11월 37만6727명으로 지난 2021년(64만2780명)과 비교해 42% 줄었다. 작년 취득자(45만2463명)와 비교해도 7만5000명 넘게 줄었다. 저출산으로 젊은 층 인구가 줄고, 저성장과 경기 불황에 따른 취업난으로 청년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운전면허 취득을 포기하는 청년도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얼마 전 수능을 친 고교 3학년 임모(18)군은 “예전에는 운전면허가 ‘성인이 된 증거’로 여겨졌다는데 요즘은 친구들 사이에서 ‘집 사기도 어려운데 무슨 차(車)냐’는 인식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
실제로 청년층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도 15~29세 가구의 중위소득은 올해 3873만원으로 작년(4047만원)보다 4% 넘게 감소했다. 20대 고용률도 지난달 59.6%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포인트 하락했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구직 활동을 그만두는 청년도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1만8968명으로 1년 전보다 3.4% 증가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쉬었음’ 인구는 지난 10월 기준 33만4000명으로 통계 작성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대중교통이 발달한 점도 청년들이 운전면허 취득에 적극적이지 않은 배경으로 꼽힌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만든 정기 구독형 교통비 할인 제도는 청년층 사이에서 큰 인기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부터 도입한 대중교통 무제한 요금제 ‘기후동행카드’의 누적 충전 건수는 1700만여 건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57.1%가 청년 할인권 이용자였다.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6만2000원짜리 ‘30일 이용권’을 7000원 할인해주자 청년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서모(29)씨는 “면허는 있지만, 차를 살 돈도 없고 유지비만 많이 드는 차량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자동차를 구입하는 청년은 줄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가 구매한 신차는 28만4052대로, 전년(30만1648대)보다 5.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들이 구매한 중고차는 3000대 넘게 줄어든 63만4297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 사이에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운전면허는 ‘가성비(가격 대비 효율성)’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의 경우 굳이 차가 없어도 밤늦게까지 운행되는 심야 버스나 지하철이 많다”며 “주차비나 기름값, 보험료처럼 차를 가지고만 있어도 지불해야 할 비용이 커지면서 청년들이 운전면허 취득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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