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노인 간병하는 가족에 휴식 선물하는 영등포구

조선일보 김수경 기자
원문보기

노인 간병하는 가족에 휴식 선물하는 영등포구

서울맑음 / -3.9 °
봉사 우수 사례로 행안부장관상
서울 영등포구 양평1동에 사는 김모(87)씨는 최근 오랜만에 집 앞 산책을 했다. 구청 봉사단에서 나온 사람들이 당뇨와 치매를 앓고 있는 김씨를 도왔다. 그런데 이날 진짜 ‘휴식’을 한 사람은 김씨를 오랫동안 돌봐온 남편 한모(90)씨였다. 한씨도 청각 장애와 심장 질환이 있지만, 아내를 돌볼 사람이 마땅치 않아 쉽사리 집을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봉사단 관계자는 “우리가 김씨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나가면 홀로 간병을 책임져온 한씨는 잠시나마 쉴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영등포구가 202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요양 보호 가족 휴식 제도’가 아픈 노인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방자치단체 봉사단이 도움을 주는 경우는 많았지만, 간병하는 가족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는 콘셉트의 제도를 도입한 건 영등포구가 전국 최초다.

봉사자들은 처방받은 약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병원에도 함께 간다. 같이 색칠공부를 하며 뇌 운동도 돕는다. 뇌경색을 앓고 있는 김모(82)씨는 신길7동 봉사단원들과 함께 매주 치매 방지용 퍼즐을 맞춘다. 김씨의 자녀들은 “요양보호사를 두기 어려운 사정이라 우리가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돌봤는데, 봉사단 덕분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고 한다. 구청 관계자는 “어르신이 원하면 화투를 같이 치고, 명절엔 한과를 만들거나 가래떡을 나눠 먹는 봉사자도 있다”고 했다.

2023년부터 지난달까지 봉사자 770여 명이 돌봄 서비스 3227건을 진행했다. 신길3동 봉사자 이정은(62)씨는 “아픈 어르신과 그 가족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 같고 또 ‘앞으로의 우리 모습이구나’ 싶어 더 애틋해지더라”고 했다. 영등포구는 최근 행정안전부의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 사례’로 선정돼 장관상도 받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제도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최 구청장은 본지 통화에서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노(老老) 돌봄이 흔해졌다”며 “가족을 돕는 제도를 통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영등포구는 내년에 ‘요양 보호 가족 휴식제도’의 대상자와 프로그램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최 구청장은 “더 촘촘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발굴·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김수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